경기도에서 초등학교 4학년 딸을 키우는 박모(44)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딸 아이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며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해서다. 초 2~3학년을 주로 원격수업으로 보낸 박씨의 딸은 정상등교가 시작되자 부쩍 말수가 줄었다. 답답했던 박씨는 담임교사와 상담도 해보고 딸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아이의 우울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전국 학교가 개학을 맞고 있는 가운데 ‘백투스쿨 블루’(원격·등교수업을 병행하던 학생이 전면등교 하면서 겪는 우울·불안감)를 호소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특히 학교에 적응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단계인 초1~2학년을 원격수업으로 보낸 3~4학년이 대표적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초등 3~4학년 아이들의 심리·정서 회복을 위한 지원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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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학기 개학이 본격화되면서 소위 ‘코로나 학년’으로 불리는 초 3~4학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초 1~2학년 때 겪은 팬데믹으로 대면수업에 제약을 받았다. 일선 교사·교장들은 코로나 학년에서 등교 거부가 발생하고 학급 내 갈등이 심화됐다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학년을 키우는 부모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에서 초3 아들을 키우는 이모(42)씨는 “아이가 등교를 시작하면서 사람이 많은 곳을 꺼려한다”며 “혼자 집에서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라며 한숨을 쉬었다. .
초3~4 아이들을 가르치는 담임교사들도 아이들의 사회성 부족해 학급 내 갈등이 많아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경기도에서 초3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 교사는 체육시간마다 아이들 간 갈등을 중재하느라 애를 먹는다. 김 교사는 “초등 체육은 정정당당한 승부에 승복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방과 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학급 내 물리적 충돌 역시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도 작은 갈등은 있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최근 이런 다툼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 대구에서 초4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 교사는 “아이들이 장기간 학교를 나오지 않다보니 기존에 알고 지내던 또래 그룹에서만 교류하려 하고 그룹 간 갈등이 발생하면 주먹질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상담교사 배치 학교 58.8% 불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성을 키우지 못한 아이들은 상담이 필요하지만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24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1만2068개교 중 7106개교(58.8%)만 상담교사·전문상담사가 배치돼 있다. 초등학교는 더욱 심각하다. 전국 초등학교 6162개교 중 2599개교(42.1%)에만 상담교사·전문상담사가 배치된 상황이다. 사춘기와 정서불안을 겪는 학생이 많은 중·고교에 상담인력을 우선 배치한 결과다.
전국 학교 41.2%는 상담인력이 없는 상황이지만, 교육 당국은 인력 확충에 소극적인 모양새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2023학년도 공립 교원 채용 선발 사전예고 규모를 발표하며 상담교사 196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지난해 최종 공고 대비 605명 줄어든 수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 정부 기조가 공무원 동결 또는 1%씩 줄인다는 입장이라 정원을 늘리기 힘들다”고 했다.
시도교육청과 일선 교사들은 상담교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상담인력 충원이 필요해 꾸준히 요청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초4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이모씨는 “(정서불안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아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학교에 상담교사가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 1곳 당 1명 이상의 상담교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 역시 담임교사와 함께 사회성 함양을 지원할 상담교사의 역할이 크다며 인력 충원을 강조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담임교사가 생활지도 같은 1차적 활동을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이를 보조해 줄 상담교사가 필요하다”며 “담임·상담교사가 함께 아이들의 정서를 치유하고 사회성을 키워 줄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