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철권 통치자가 국제 사회에 고개를 숙인 대사건이었다. 주일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일본 TV들이 전한 이 장면을 도쿄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기자의 기억에서도 김 총서기의 당시 음성과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 파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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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나라 안과 밖이 다를 수밖에 없다. 침탈과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해 겪은 탓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애정과 호감보다 적개심, 혐오로 더 쏠려 있는 우리에게 일본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후한 점수를 얻기 힘들다. 일본 어린이들에게 위인으로 존경받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서는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이토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겐 영웅이지만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로 표현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베의 경우는 항일 투쟁하듯 ‘죽창가’를 외치며 반일 몰이를 부추겼던 문재인 정부의 흠집내기와 거리두기가 점수를 더 깎아내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다수 한국인의 감정과 결이 다르지만 일본 언론이 주목하는 정치인 아베의 최대 공적 중 하나는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 해결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5명을 귀국시키는 등 국민의 아픔을 치유해줬다는 점이다. 1997년 ‘납치피해자 가족 모임’ 발족을 주도한 그는 피해자 송환 등 해결을 요구하며 끈질기게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납북된 요코다 메구미의 부친이 2020년 별세했을 때에는 “메구미를 아직 귀국시키지 못해 창자가 끊어지는 듯 슬프다”며 유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아베 사망 직후 메구미의 모친이 “납치 문제에 대한 세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베 덕”이라며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라고 애도할 정도였다.
아베를 잃었지만 일본 국민은 김정일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국민 보호를 외쳤던 그의 충정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2년 전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구조는커녕 총알 세례를 받고 죽어간 해양수산부 공무원과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 송환된 북한 어부들의 소식에 가슴이 저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인권변호사라는 문 전 대통령 시절 일어난 사건들이며 국가와 지도자의 자국민 보호 의무를 곱씹어보게 하는 일들이어서다. 악플을 각오한 글이지만 한일 두 지도자의 너무도 판이한 행보 탓에 뒷맛이 영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