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뉴스속보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의 리라화 폭락사태를 ‘경제전쟁’으로 규정하며, 이슬람교 신앙과 애국심으로 싸워 이기자고 호소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북동부 바이부르트에서 열린 행사에서 “여러분 베개 밑에 달러나 유로, 또는 금이 있다면 은행에 가서 리라로 바꾸라”고 독려했다. 그는 “이는 국민적 투쟁”이라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선포한 자들을 향한 우리의 반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리라화는 터키 정부대표단이 미국과 갈등 조정에 실패하고 전날 귀국했다는 소식에다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의 관세를 두배로 올린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표에 하루 만에 20% 가까이 폭락했다. 전날 5.55리라에 마감한 리라달러환율은 이날 오후 6시께 6.50리라까지 치솟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그는 “달러는 터키가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면서 터키는 미국이 아니고도 이란, 러시아, 중국, 유럽 각국 등 대체 시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경제와 국방·에너지분야 협력에 관해 논의했다고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이 보도했다. 이어 인근 귀뮈샤네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를 말로 위협하고 협박할 수 없다”면서 “이 나라를 겁박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밤 흑해 연안 도시 리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러 가지 작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거기에 휩쓸리지 말라”면서 “그들에게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민이, 우리 알라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인 보수 무슬림은 그의 정치적 위기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리라화 불안의 근본 원인은 고질적인 경상수지적자와 막대한 대외 채무이지만, 최근의 투매는 정치·외교적 요인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다. 터키는 브런슨 목사 구금뿐만 아니라 이란 제재, 관세, 시리아 사태 등으로 미국과 반목하고 있다.
1993년 터키에 입국해 2010년 서부 이즈미르에서 교회를 개척한 브런슨 목사는 2016년 10월 테러조직 지원과 간첩행위 혐의로 구속돼 옥살이를 하다 지난달 말부터 가택연금 상태다. 터키는 또 미국의 압박에도 이란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계속 수입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반대에도 러시아 방공미사일 S-400 도입을 강행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금리 인상에 거부감을 보이며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