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경제를 앞에서 끄는 힘을 믿을 수 없다면 결국 내수 경기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내수 부문 내 특정 섹터의 문제라면 처방전을 통해 약국에서 약만 받는 미시적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를 망라한 전방위적 침체라면 외과적 수술도 동시에 필요하다. 즉, 거시정책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기획재정부가 재정정책에서 추경으로 재정을 풀거나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서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둘 다 요원하다. 기재부와 한은이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지 않는 근거는 건전성이다. 먼저 추경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전 정부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격하게 악화한 ‘재정 건전성’ 때문이다. 한은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물가 안정 목표 때문이지만 금리를 내릴 경우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외환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뇌피셜로는 기재부와 한은이 모두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건전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눈치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찌 됐건 두 정부 기관이 재정 건전성과 금융 건전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면 사실 반박이 불가하다. 왜냐하면 과거 외환위기, 카드채 사태, 금융위기, 재정위기 등 많은 경험을 해본 입장에서는 경제의 건전성이 훼손돼 위기를 다시 겪느니 차라리 경기가 침체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와 달리 이미 다른 나라들은 거시정책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금리를 내리지는 않지만 해마다 부채 한도를 늘리면서 적극적인 재정 지출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는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시장은 확신하고 있다. 캐나다와 유로존은 미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하면서 내수 부문이 고금리의 압박에서 버티도록 노력 중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이들 나라보다 더 좋은 것인가. 그래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어도 문제는 없을까. 그런데 반드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경기 부양 기조로 바뀌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의 결과로 현재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옳았는지 아니면 실기(失期)했는지 평가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 그 ‘건전성’이라는 것이 내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