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에 합의한 근로자는 있어도, 적극적으로 관철한 근로자는 보지 못했다. 법에 근거가 없어 근로자 개인이 느끼는 압박 등 구조적 위험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도 못한다.”(유준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
노동계와 경영계가 포괄임금제 금지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노동계는 포괄임금제가 장시간 노동과 공짜 야근을 유발한다며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근로시간에 따른 성과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포괄임금제 활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임금체불처럼 오남용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대한경영학회는 31일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제3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을 열어 포괄임금제 현황과 문제점,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기조발제 후 윤동열 대한경영학회장 주재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경영계와 노동계는 포괄임금제 금지 여부를 놓고 강하게 부딪쳤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장, 야간근로 등이 예정된 경우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연장, 야간, 휴일수당을 미리 정해 매월 급여와 함께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이다. 일부 사용자가 약정한 시간을 넘겨 더 오래 일한 근로자에게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 때문에 ‘공짜 야근’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노동계와 야당 등에선 포괄임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포괄임금 계약 금지 법안도 발의했다. 이날 경영계는 포괄임금제가 법적으로 금지되면 근로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반대 뜻을 명확히 했다.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포괄임금을 법으로 금지하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포괄임금 수당을 받지 못해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며 “포괄임금제 오남용의 문제는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체불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 필요성과 제도의 오남용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본부장도 “기업에서 많이 활용하는 포괄임금제는 월 20시간을 약정하고 연장근로 수당을 주는 방식인데, 실제 연장근로를 10시간만 해도 20시간 어치의 수당을 준다”면서 “만약 노동계가 포괄임금제를 없애면서 수당을 기본급에 넣자고 한다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 노사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노동계는 사용자의 힘이 근로자보다 강한 상황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포괄임금제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사용자의 힘이 월등히 강해 포괄임금제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어렵다”며 “포괄임금에 따른 수당은 사용자가 기본급으로 인상해야 하는 부분을 대체한 성격도 강해 기본급을 인상하거나 다른 수당의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준환 새로고침 노조협의회 의장은 “자체 조사 결과, 근로시간을 상사의 지시로 축소 보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근로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하는 사업장, 마우스 움직임으로 근로여부를 판단하는 사업장 등에서도 포괄임금제를 만연하게 활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편 포괄임금제 금지 여부는 디지털 사회 변화에 따른 근무방식 다양화와 그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선 충남대 교수는 “1970년대 공장제 근로기준법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포괄임금제만 제한하려고 하니 문제가 복잡해졌다”며 “기본급보다 수당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기형적 임금 구조 내에서 포괄임금제 문제는 임금 관련 제도 개선과 함께 패키지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괄임금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철저한 실태조사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황선자 한국노총 부원장은 “주52시간제가 2021년부터 전면 도입되면서 사무직 포괄임금제 변화가 컸지만 정부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명확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근로시간의 범주부터 포괄임금제 개선방안까지 면밀하게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