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전문가들은 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사태 이후 이어진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 등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과거의 정부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노조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윤석열 정부 1년간의 노동개혁은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하고 싶다”며 “그동안 노사관계에서 나타난 폭력적인 모습 등 만성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을 전환할 수 있는 분기점을 마련했다는 점은 성공적인 부분”이라고 밝혔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는 국제적 기준에 비춰봐도 옳은 방향”이라며 “노조의 회계는 다른 개혁 과제와는 달리 법 개정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고, 국민적 공감대도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에 따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가 가진 한계점과 과제를 공론화했다는 부분은 긍정적”이라면서 “노조를 공격하는 과정이 다소 일방적이고 과감했지만, 노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혁신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됐고, 장기적으로 노사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노조 공격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지나쳤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노조를 공격하면 국민의 지지가 오른다는 공식을 활용한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며 “일부 노조의 문제를 침소봉대해 전체의 문제로 낙인찍고 공격하니 분신 사태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실패…국민 공감 못 얻어”
노조에 대한 엄정 대응에 관한 평가와 달리, 노동정책 개혁에 대해선 대체로 부정적 반응이었다. 특히 ‘주 최대 69시간제’라고 불리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국민 대다수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 미숙함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정부 주도로 신속하게 추진했던 건 그만큼 개혁이 시급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다만 개편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52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워라밸을 경험한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크게 반발했고, 그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게 치명적 실수”라고 말했다.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도 “현장의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고 반영해서 제도를 개선해야 했지만, 전문가 주도로 하다 보니 개혁의 정당성이 떨어졌다”면서 “근로시간 제도 변화의 영향은 복합적·종합적인데, 정부의 개편안은 단편적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노동개혁 추진을 위해 이제라도 사회적 대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이 초기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고는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 지난 1년의 교훈이라고 했다.
최영기 교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만 따로 추진하려 하지 말고,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패키지 전체를 다 같이 사회적 대화의 대상으로 삼은 뒤 한국노총 등 노동계와 경영계, 전문가,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걸 전제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국 교수는 “정권 초반과 달리 이제는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는 연합이 광범위하게 구성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야 한다”며 “특히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고집해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호봉제 개혁부터 비정규직 차별, 플랫폼 노동자 같은 취약계층 보호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개혁의 전면에 내세워 개혁의 공감대를 넓혀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