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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에 고금리에 위태로운 PF…사각지대 '시한폭탄'

김성수 기자I 2023.02.13 06:00:00

[살얼음판 PF 시장] ②
공사비·본PF 이자비용 부담 커져
분양 감행했다간 손실만 더 확대
미분양 심각한 지방 돈가뭄 심화
저금리 HUG 보증 은행 대출도 중단
전문가 "공적자금 투입 필요할 수도"

[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건설사는 주택경기의 부침을 숱하게 겪어본 선수다. 특히나 대우건설쯤 되는 회사면 UDT(인간병기)라 할 수 있다.”

국내 대표 건설사인 대우건설이 440억원을 날려가면서 울산 주상복합 시공을 포기한 것을 두고 배문성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크레디트 애널리스트가 남긴 말이다. ‘인간병기’인 대우건설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그만큼 부동산 PF 시장이 위험하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보였지만 실물 부동산 PF 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문제는 고금리에 지방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만큼 ‘제2의 대우건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은 만큼 정부가 ‘부동산PF 위험’ 대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대우건설, 울산 사업장 포기…“고금리에 사업성 낮아”

12일 부동산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최근 ‘울산동구일산동푸르지오’ 사업장에 시공사로 참여하면서 연대보증 섰던 후순위 브릿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공사비, 본PF 이자비용을 부담하면서 사업성이 나오려면 부동산경기가 좋고 금리가 지금만큼 오르기 전이었던 작년에 검토했던 분양가보다 훨씬 높은 분양가를 매겨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업을 끝까지 진행하면 손실 규모가 440억원의 2~3배로 커질 것으로 예상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근 울산지역 민영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은 1대 1에도 못 미친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7~12월) 울산에서 분양한 민영아파트 1순위 평균 경쟁률은 0.35대 1로 집계됐다. 올해 울산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한 곳도 없다.

공사비와 본PF 금융비용 부담도 높다. 특히 본PF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들은 금리를 최저 12~13% 수준으로 높게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 최고금리는 20%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본PF 금리가 작년 말 기준 12% 내외였다”며 “현재는 10% 내외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엑시트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다.

◇ 고금리에 부동산PF ‘돈가뭄’…‘제2 대우건설’ 나올 것

이번 사례는 PF ABCP로 유동화되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 여전히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에 힘입어 우량 사업장 PF ABCP 금리는 낮아졌지만, 실물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있다는 것이다.

작년까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PF 보증을 이용하면 대출금리를 낮출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어렵다. 시행사가 HUG PF 보증(표준PF)을 담보로 대출받으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1.5%포인트 수준에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은행들로서는 금리 결정권이 없고 마진이 낮다는 이유로 HUG의 PF 보증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에 HUG는 PF 보증을 활성화하기 위해 표준 PF 방식을 올해부터 한시적으로 중단했고, 그만큼 대출금리는 높아졌다.

최근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회생절차를 개시하는 등 혼란이 커져 부동산PF 시장은 더욱 경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공능력평가순위 83위 대우조선해양건설은 34억원 규모의 노동자 임금체불로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잠잠해진 PF 시장에 또 다른 파장이 일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은 수도권보다 미분양 물량이 많은 데다, 규모가 작은 중소건설사들 사업장이 많아 더 극심한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이 커서다. 고금리 지속으로 부동산시장이 단기 회복되기 어려운 만큼 ‘제2의 대우건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 지방 등 부실화 예상…정부 ‘본PF 부실억제’ 고민해야

게다가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다. 예컨대 HUG PF보증을 받으려면 여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건축 연면적의 경우 △분양사업은 수도권·광역시 5000㎡ 이상, 기타지역 1만㎡ 이상 △임대사업은 지역에 관계없이 5000㎡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시공자 요건인 △HUG 신용평가등급 BB+ 이상 △시공능력평가순위 700위 이내 또는 최근 5년간 주택건설실적 300가구 이상업체 △책임준공의무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보증 규모 한도도 제한적이다.

HUG의 올해 보증규모 목표치는 △일반 PF보증 10조원 △준공 전 미분양 사업장에 대출보증 5조원이다. 주택금융공사(HF)의 PF보증 목표치는 5조원이다. 다만 이 금액은 세대수가 큰 사업장 기준으로 10여곳 정도에만 보증할 수 있는 규모라는 분석이다.

향후 부동산시장은 지방 중심으로 부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브릿지론보다 본PF의 부실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본PF가 브릿지론보다 건당 대출 규모도 크고 수적으로도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업계에서는 브릿지론 단계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멈춘 사업장 규모가 전국적으로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에 정부가 본PF 부실 억제를 위한 추가적 유동성 공급장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사업성이 낮은데 무리하게 추진됐던 현장들은 정부 지원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도권 대형 사업장 몇 군데를 제외하면 부실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본격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지방에서 개발 사업들이 과도하게 이뤄진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정부 재정은 한정돼 있는 만큼 사업성이 낮은 현장까지 모두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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