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전면에 나서다

오현주 기자I 2018.10.15 00:12:01

왕실부터 여염집까지 똑같이 쓴 '병풍'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기획전서 재조명
보물급 등 76점'조선, 병풍의 나라' 전
세세히·담대히' 새겨넣은 역사·시대상
2100명 북적대던 번화가 '태평성시도8폭'
마지막 황실잔치 '고종임인진연도8폭'등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 부분(1902·비단에 채색·오른쪽 두 폭)과 ‘태평성시도8폭병풍’ 부분(18세기말∼19세기초·비단에 채색·가운데 두 폭). 1902년 고종의 망육순(51세)과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궁중행사를 묘사한 ‘고종임인진연도’가 존폐기로에 선 한 나라의 절박함을 묻혀 냈다면, ‘태평성시도’는 18세기 말 생산과 소비, 유흥이 폭발하는 듯한 상업적 번성기를 2100여명의 등장인물로 표현했다(소장=아모레퍼시픽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평민이든 양반이든 왕이든 신분격차 없이 똑같이 사용했던 거의 유일한 물건이 있다. 규모나 내용까지 같을 수야 있겠는가. 왕실이나 여염집 대소사에 빠짐없이 불려나가는 집사의 역할을 해낸 물건이란 뜻이다. 한 번 세밀하게 들여다볼까.

가장자리에 종이나 천을 엇갈리게 붙여 연결한 물건, 공간을 장식하거나 분할하는 용도로 쓴 물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이동·설치를 편리하게 고안한 물건, 좋은 일에든 나쁜 일에든 가리지 않고 동원한 필수품, 그래서 왕가의 가례·상례·흉례·진찬은 물론 일반살림집의 혼례·회갑·돌잔치·제례에도 빠지지 않았던 물건, 2·4·6·8·10·12 등으로 짝을 이뤄야 제대로 서는 물건, 권위·번영·부귀영화·입신양명·무병장수까지 질과 양은 달라도 품은 뜻은 다르지 않았던 물건, ‘은폐하다’ ‘앞을 가리다’ ‘나무를 둘러친 숲’이란 뜻의 한자어 ‘병’(屛)자를 쓰는 물건. 맞다. ‘병풍’이다.

하지만 병풍의 특징이라면 어디까지나 ‘들러리’가 아닌가. 아무리 중차대한 현장에 파견돼도 본 행사에선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곁다리쯤으로 여겼던 거다. 그런데 여기, 그동안의 병풍에 대한 고정관념이 대단히 잘못됐다는 걸 지적하는 자리가 있다. 4∼5m 장대한 폭에 펼친 전통회화 혹은 공예품이 그리 흔하더냐는 거다.

‘기성도8폭병풍’(19세기·종이에 채색).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6호다. 평양성 일대 평안감사 행렬을 담은 그림으로 병풍을 엮었다. ‘기성’은 평양의 별칭. 도시의 성장, 회화식 지도의 발달, 실경산수화의 유행 등 18세기 변화된 분위기를 반영했다(소장=서울역사박물관,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펼친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 전시는 그간 저평가된 병풍의 가치를 끌어내는 데 공을 들였다. 당장 규모로 압도한다. 총 76점. 한 점당 8~10폭의 그림이 붙은 데다가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4㎞쯤은 된다니. 수준도 만만치 않다. 보물급·문화재급이 여러 점 나섰다. 보물 제733-2호 ‘헌종가례진하도8폭병풍’, 보물 제1199호 ‘홍백매도8폭병풍’,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0호 ‘전이한철필어해도10폭병풍’,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6호 ‘기성도8폭병풍’,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요지연도8폭병풍’ 등. 여기에 5000여점을 컬렉션하고 있다는 미술관 자체 소장품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호림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10여개 기관이 소장한 작품까지. 이른바 병풍의 재발견. ‘들러리’ 가리개가 전면에 나선 순간이다.

‘전이한철필어해도10폭병풍’(19세기 중반·종이에 수묵). 조선 말기의 화원화가 이한철(1808∼1893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물고기와 게 등은 약동하는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요소로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소장=서울역사박물관, 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의 절박함…‘마지막 황실연향’ 8폭 병풍에

타이틀 대로 전시는 병풍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 특히 조선시대의 그것을 각별히 조명한다. 작품에 스민 스토리라면 단연 ‘해상군선도10폭병풍’(19세기말∼20세기초)이다. 5년 전 해외서 귀환한 작품은 고종이 독일인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1858∼1916)에게 선물했던 병풍. 볼터는 한국 최초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의 공동 창업주였단다.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1908년 일곱 남매를 데리고 20여년을 산 이 땅을 떠나게 됐다는데, 이를 못내 아쉬워한 고종이 볼터에게 마음의 표시로 내줬다는 거다. 병풍은 볼터의 둘째 딸, 또 그 딸의 딸에게 물려왔던 터. 그러다가 2013년 국내 경매를 통해 돌아왔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6억 6000만원에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왕모의 요지연에 참석하러 가는 여덟 신선이 각 폭에 나뉘어 든 작품은 신선그림을 즐겼다는 김홍도(1745∼1806)의 화풍을 이었다는 특징으로도 화제가 됐다.

‘해상군선도10폭병풍’(19세기말∼20세기초·종이에 채색). 서왕모의 요지연에 참석하러 가는 여덟 신선이 각 폭에 나뉘어 들었다. 한국 최초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의 공동 창업주였던 독일인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고종이 선물했던 작품이다. 2013년 국내 경매를 통해 한국으로 귀환했다(소장·사진=아모레퍼시픽미술관).


왕실 대대로 내려온 작품이라면 ‘일월오봉도8폭병풍’(19세기말∼20세기초)이 꼽힌다. 붉은 해와 하얀 달이 다섯 개의 산봉우리에 나란히 떠올라 있고, 산 아래 굽이치는 물결과 삐죽이 솟은 소나무가 짙푸른 배경에 반추상으로 그려졌다. 조선 국왕의 권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은 임금이 자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떴다’.

재미있는 것은 ‘일월오봉도8폭병풍’이 왕실의 행사를 묘사한 다른 작품 안에도 들어있다는 건데.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1902)이 그것이다. 고종의 망육순(51세)과 즉위 40주년을 기념한 궁중행사를 자세히 살핀 그 작품 중앙에 ‘일월오봉도8폭병풍’이 박혀 있다. 하지만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을 보는 마음은 넉넉할 수 없다. 1902년 11월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열렸다는 이날 잔치는 존폐기로에 선 한 나라의 마지막 승부수였으니까. 실제 이 행사는 조선의 마지막 황실연향이 됐다. 그 절박함 때문인가. 연회부터 ‘열병식’까지 작품은 시간순서대로 진행한 과정을 세밀히 그려낸다. 전통군대는 물론 서양식 제복을 입고 도열한 신식군대, 그때 그 모습의 ‘태극기’까지.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의 부분. 오른쪽으로 서양식 제복을 입고 도열한 신식군대가, 왼쪽으로 당시 제작했을 ‘태극기’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100명 등장한 조선식 ‘월리를 찾아서’도

병풍의 미학은 이뿐만이 아니다. 18세기 진경산수화가 쇠퇴한 자리에 서서히 나선 민화풍 ‘금강산도10폭병풍’(19세기)은 600㎝ 폭의 크기 자체가 볼거리다. 도장을 찍듯 새겨 넣은 붉은색 지명은 지도화한 그림의 실용성도 내보인다. 한때 유행한 ‘월리를 찾아서’처럼 도시 전체를 깨알 같은 디테일로 만든 ‘태평성시도8폭병풍’(18세기말∼19세기초)도 있다. 상점·상인이 밀집한 도성 한복판 번화가에 생산과 소비, 유흥이 폭발하는 듯한 모습을 2100여명의 등장인물로 대신했다. 1800년대 평양성 일대를 마치 드론으로 촬영한 듯 가옥과 동네를 셀 수 있게 구획한 ‘기성도8폭병풍’(19세기)도 꼼꼼함에선 밀리면 섭섭하다. 병풍에 그림만 있던 것도 아니다. 도화서 화원 출신 양기훈(1843∼?)의 초본을 토대로 비단 10폭에 매화 한 그루를 한땀 한땀 채운 ‘자수매화도10폭병풍’(19세기말), ‘孝·悌·忠·信·禮’(효제충신예) 등 유교덕목 8가지를 쓰고 그 안을 그림으로 채운 ‘문자도8폭병풍’(19세기)은 조선식 캘리그라피인 셈이다.

‘금강산도10폭병풍’(19세기·종이에 수묵)의 부분. 18세기 진경산수화가 쇠퇴한 자리에 서서히 나선 민화풍 금강산도다. 도장을 찍듯 새겨 넣은 붉은색 지명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기성도8폭병풍’의 부분. 1800년대 평양성 일대를 마치 드론으로 촬영한 듯 가옥과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유교가 통치이념이었던 만큼 조선에선 의례·행사 등을 정례화하는 작업에는 당연히 병풍부터 찾았을 터. 아쉬움이라면 이번 전시가 그 조선 600년을 채 아우르지 못한 거다. 19세기 이후 제작한 작품에 대부분 의존했는데. 기능·재료 등으로 전시작을 선별하는 게 쉽지 않았을 만큼, 이전 작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다.

폭 500㎝를 넘나드는 거대한 작품이 줄줄이 걸렸지만, 전시는 무조건 ‘디테일’이다.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 코가 닿을 듯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볼 일이다. 가림막에 가려졌던 장면들이 기대 이상으로 펼쳐질 테니. 전시는 12월 23일까지.

‘문자도8폭병풍’(19세기·종이에 채색). ‘孝·悌·忠·信·禮·義·廉·恥’(효제충신예의염치) 등 유교덕목 8가지를 쓰고 그 안을 그림으로 채웠다. 조선식 캘리그라피인 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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