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살다보면 의외의 변수가 있다. 올해도 흐드러진 진해 벚꽃 구경을 놓친 것이다. 오래전부터 봄날에 만개한 진해의 화려한 벚꽃을 한번 보리라 작정했었다. 어차피 돈 많고 호사하기는 그른 인생, ‘버킷 리스트’는 아니더라도 남들이 다 보는 벚꽃을 이번에는 제대로 즐겨보려고 했다. 통영에 잠자리까지 예약해놓고 진해로 돌아 나오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틀어졌다. 큰 애가 같은 날짜에 제주도 2박3일 ‘환불불가’ 관광 패키지를 인터넷에서 덜컥 잡아놓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사람 득실거리는 곳을 피해 걸을 수 있는 곳을 골라 다녔다. 새삼 발견한 것이 제주도의 다양한 나무 종류였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나무들이 가는 곳마다 자라고 있었다. 길가에 쭉쭉 뻗은 비자림의 숲은 하늘을 가린다. 500년, 800년 된 비자나무들은 우람했다. 무수한 세월을 누군가에게 찍혀내지도 않고 총탄에 다치지도 않은 채 살아남은 것은 숱한 행운의 결과로 보였다.
거기서 멀지 않은 어느 관광지 안에 나무, 덩굴식물과 암석 등이 뒤섞인 곶자왈 숲이 있다. 이곳 나무들은 꼭대기까지 타고 오른 덩굴에 옥죄어 숨쉬기도 어려워 보인다. 바람에 쓰러져 뿌리가 드러나게 누워있으면서도 아직도 살아있었고 그런 시체 같은 나무 위에 또 다른 나무가 위로 생명을 뿜어 올리는 기괴한 모습도 있었다.
동백꽃이 한창이라는 말에 우연히 찾은 동백동산은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했다. 낮은 나무들이 서로 엉켜 밀림을 방불케 하는 숲속의 길을 구불구불 따라 걸으니 으스스할 정도다. 납치돼 살해돼도 아무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도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해 조금 가다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백동산은 1948년 4·3사태 때 청년 25여명이 살기 위해 피난한 곳으로 최근 개봉된 영화 ‘지슬’의 무대가 됐던 곳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동산 안의 동굴로 숨었던 이들은 토벌군에 체포돼 총살을 당했다. 공교롭게 4.3사태 기념일 직전에 동백동산을 찾은 것이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뒤틀리면서도 힘겹게 생을 이어간 경주 남산의 소나무보다 더 고통스럽고 처절한 모습을 제주도 나무들은 보여주었다. 같은 제주도 땅에 서로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왜 이렇게 다양한 숲과 나무들이 존재하는가.
모두 변덕스런 제주도 날씨에 제주도 동북부란 비슷한 환경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아닌 상식적인 짐작으로는 토양과 바로 인근 환경이 나무들의 다양한 생장(生長)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덩굴이 많이 자라는 곳에 뿌려진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덩굴의 괴롭힘을 겪으면서 부대끼며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넓고 평탄한 터에 홀씨가 떨어지면 나무는 쭉쭉 뻗었을 것이다.
식목일 직후인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정원에서 이팝나무를 식수(植樹)했다. ‘쌀밥’을 연상케 하는 하얀 꽃을 피우는 이 나무는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심던 나무다. 박 대통령은 옛 청와대 시절을 떠올리며 “나무를 심을 때는 우리들의 꿈과 희망도 같이 심었다”고 말했다.
그런 꿈과 희망은 인간이 자의적으로 품을 뿐이다. 나무는 심어진 곳이 운명이다. 청와대의 반듯한 평지에 사는 운좋은 나무도 있고 홀씨가 떨어진 곶자왈 숲에서 죽는 날까지 덩굴과 잡초에 시달리는 나무도 있다. 척박한 땅과 어지러운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생존을 위해 더 고생한다.
새삼 발이 달린 인간은 지저분한 곳과 추한 사람들을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떠나라, 떠나라. 그 나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곶자왈을 떠나면서 뒤로 남겨져 떠나지 못하는 나무들이 가여워 보였다.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p.s.진해벚꽃은 못봤지만 제주대학 앞에서 만개한 벚꽃을 봤다. 4.3사태 현장도 봤다. 살다보니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