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미국)=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레드오션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에 뛰어드는 업체가 늘수록 ‘잘 하는 회사’와 ‘잘 하고 싶은 회사’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입니다.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후발주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068270)을 비롯한 선두주자들이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보다 몇 십배 더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지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은 결코 후발주자들의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3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류머티즘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만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회사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풍부한 노하우”라며 이같이 밝혔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2012년 설립한 이후 6년 동안 세계 최다인 4개의 바이오시밀러를 상용화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은 경쟁사들이 단기간에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통상 7~8년 걸리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을 절반 수준인 4~5년으로 단축했다. 고 사장은 “바이오시밀러와 관련해 세포주 개발부터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해 각 단계에서 필요한 시간과 간격을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사장은 미국 교포로 미국에서 유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지에서 바이오벤처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 바이오 분야 전문가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사업을 신수종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2000년 고 사장을 영입했다. 삼성은 바이오의약품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에 집중한다. 고 사장은 이러한 삼성의 바이오사업 전략 밑그림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17일 유럽에서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임랄디’를 출시했다. 이로써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휴미라를 비롯해 ‘레미케이드’, ‘엔브렐’ 등 세계 3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를 모두 상용화했다. 업계에서는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경쟁은 기존과는 다를 것으로 예상한다. 앞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는 셀트리온, 엔브렐에서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퍼스트무버’(선도자)로 오리지널 약과 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포함한 4개 회사가 동시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전 세계 10여개 업체들이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고 사장은 “바이오시밀러는 특허 만료 시기와 약 성분 등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 이는 날짜와 과목을 미리 정하는 수능시험과 비슷하다”며 “하지만 수능시험에서도 능력에 따라 편차가 있듯이 바이오시밀러에서도 개발에 성공하는 회사와 상업화할 수 있는 회사, 매출을 크게 일으키는 회사 등 순서가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원활한 제품 공급은 가격만큼 중요한 경쟁력”이라며 “바이오시밀러는 대부분 생명과 직결되거나 난치질환에 쓰이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가격만큼 공급 능력도 꼼꼼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개발에 성공한 바이오시밀러 4종 외에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바이오시밀러 등을 개발 중이다. 췌장염 신약의 경우 일본 다케다와 공동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개발 중인 약 코드명을 ‘SB’ 뒤에 수를 붙인다. 이를테면 췌장염 신약 코드명은 ‘SB26’이다. 26번째로 시도하는 물질이라는 의미다. 고 사장은 “상업성을 고려해 개발 가능한 전 세계 모든 바이오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바이오시밀러로 캐시카우를 마련해 신약에 도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신약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을 공식화했다. 고 사장은 “회사를 설립할 당시부터 역량이 쌓이면 도전할 장기 과제가 오픈이노베이션이었다”며 “이제 시점이 됐다고 판단해 오픈이노베이션에 나선 것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장성이 있고 같이 해서 시너지효과가 날 회사라면 어떤 곳과도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사장은 장기적으로 바이오 전문가를 육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는 뜻도 내비쳤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성장하고 건전한 바이오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인력자원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 고 사장은 “실제로 겪어 보면 우수한 인재를 찾는 것은 나중 문제로 현장에 투입할 인력 자체가 절대로 부족하다”며 “인력양성은 회사를 위해서라는 의미보다는 국내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