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경쟁자 노릇하는 AMD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지난 9년간 없는 것이나 다름없던 경쟁사 AMD가 16코어라는 머릿수를 앞세워 하이엔드 데스크톱 시장의 왕좌를 인텔로부터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 격인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는 지난 8월 10일 출시되었고 불과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현존하는 가장 빠른 데스크톱 프로세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인텔은 지난 25일 아껴둔 무기를 모두 봉인해제한 것이다. 바로 12코어를 탑재한 코어 i9-7920X, 14코어의 i9-7940X, 16코어의 i9-7960X 그리고 18코어의 i9-7980XE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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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4-18개의 코어를 탑재한 코어 i9-7940X/7960X/7980XE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가 코어 수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단위 성능 및 작동속도의 열위를 상쇄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당장 코어 i9-7960X부터는 1950X와 코어 수가 같아지며 나아가 코어 수가 역전되는 i9-7980XE는 적어도 성능 그 자체만으로는 1950X에게서 챔피언 벨트를 탈환할 것이 확실하다. AMD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을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8월 31일의 ‘라이젠 스레드리퍼 1900X’ 발표였다.
AMD는 이날 라이젠 스레드리퍼 라인업의 막내 1900X를 정식으로 출시했으나, 최고 16~18코어까지로 구성되는 하이엔드 데스크톱 시장에서 고작 8코어에 불과한 하위제품의 추가가 관심을 끌기란 어려운 법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AMD는 이날 매우 의미심장한 두 가지 사실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 첫번째는 라인업의 층위에 따라 PCI 익스프레스 등 입출력장치 확장성이 좌우되는 인텔과 달리, 자신들은 하이엔드 데스크톱 시장의 최하위 모델인 1900X에까지 최상위 모델과 동등한 입출력 확장성을 제공한다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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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코어 i9 각 모델에 최대 44개의 PCI 익스프레스 대역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그 하위 라인업인 코어 i7의 경우 20-28개로 그 수가 제한되는데 이에 따라 한 시스템 내에 장착 가능한 그래픽카드 개수, 고속 저장장치의 일종인 비휘발성 솔리드스테이트 드라이브 (NVMe SSD) 개수 등이 좌우되는 특징이 있다. 엄격한 서열 구분을 통해 하위 라인업에 의한 상위 라인업의 침범이 이뤄지지 않게 하려는 오랜 전략이다.
반면 AMD의 라이젠 스레드리퍼는 최하위 1900X부터 최상위 1950X에 걸친 전 라인업이 64개의 PCI 익스프레스 대역을 지원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1900X의 주변기기 확장성은 같은 체급의 코어 i7보다 두 배 이상 넓을뿐 아니라 코어 i9보다도 45% 더 넓다. 물론 넓은 PCI 익스프레스 대역을 성능으로 환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시스템 성능의 상한을 결정짓는 병목현상은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가 아니라 주변기기 그 자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시스템 전체에서 가장 느린 장치로는 저장장치가 손꼽힌다.
여기서 한가지 묘수가 고안된다. PCI 익스프레스 대역에 따른 성능 차를 이끌어내기 위해 NVMe SSD를 병렬로 구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장장치가 전체 시스템 성능의 발목을 빈번하게 잡는 오늘날의 환경에, PCI 익스프레스 대역을 활용해 저장장치를 병렬로 연결하면 가장 손쉽게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인텔의 경우 NVMe SSD RAID 구성을 위해서는 최소 99달러에서 최대 299달러에 달하는 ‘활성화 키’를 구입해 메인보드에 꽂아야 한다. 게다가 정작 PCI 익스프레스 라인이 넉넉한 AMD는 NVMe RAID를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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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는 밀리더라도 챔피언 바로 아래 모델까지는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성능을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가 이미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가격이 코어 i9-7980XE의 절반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즉, 지난 9년간 하이엔드 데스크톱 시장에서의 경쟁 자체를 성립시키지 못했던 AMD로서는 굳이 더 욕심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성과를 거뒀다고 여길 수 있겠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수설에 그친 두번째는, 오히려 아직 경쟁은 끝난 게 아니고 AMD는 실제로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를 코어 i9-7980XE의 라이벌로도 손색없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많은 정황은 첫번째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상술한 두 가지 심상찮은 움직임은 두번째를 가리키며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마침 지난 8월 31일 진행된 AMD 코리아의 기자간담회에서 그들은 인텔의 코어 i9-7980XE에 대해 두 가지 요지로 답변했는데, 하나는 비록 코어 수는 2개 더 많지만 작동 속도가 더 낮아 최종 성능은 큰 차이가 아닐 것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설령 CPU 성능에서 인텔이 근소 우위를 차지하더라도 플랫폼 레벨에서 AMD가 더 많은 확장성을 지원하며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인텔의 왕좌 재탈환 시도에 대응하여 AMD는 라이젠 스레드리퍼 1950X에 NVMe SSD RAID라는 날개를 달아 맞불을 놓는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결국 9월 25일 이후의 CPU 시장에서 AMD는 ‘코어 i9-7980XE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지지는 않는’ 성능과, 인텔 플랫폼이 ‘공짜 점심’ 으로 제공하지 않는 NVMe SSD RAID를 무기삼아 실제로 대등하게 경쟁할 마음가짐인 것이다. CPU는 대동소이하고 플랫폼은 더욱 풍부한 기능과 확장성으로 무장했다면 종합적으로 하이엔드 사용자들의 입맛에 비춰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닥터몰라=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운영진이 하드웨어를 논하는 공간이다. 부품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폭 넓은 하드웨어를 벤치마크하는 팀이기도 하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미 알려진 성능의 재확인을 넘어 기존 리뷰보다 한층 더 깊게 나아가 일반적으로 검출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숨은 성능까지 예측가능한 수리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필진으로 이대근 씨(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 전공), 이진협 씨(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 및 컴퓨터공학 전공)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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