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6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여당 수장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떼면서 했던 취임 일성이다. ‘윤석열의 남자’로 불리던 한동훈의 등장에 대해 당시 정치권에서는 그의 역할론에 대해 백가쟁명식 의견이 쏟아졌지만 그는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본인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지만, 총선 이후 어떤 사심이나 욕심도 없이 바로 물러나겠다는 포부가 꽤 신선하게 들렸다.
하지만 총선은 참패했고, 한 전 위원장은 불과 두 달여 만에 또다시 등장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퇴임까지 걸린) 108일은 나라를 바꾸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말은 전과 달리 궁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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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에 반응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민의힘 혁신’을 내세웠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당 대표 후보등록 이후 첫 지역 일정으로 대구, 부산 등 보수당의 텃밭 지역을 찾았다. 전대 결과를 좌우할 ‘핵심 키’인 책임당원이 40%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몰린 영남권 공략을 위해서다. 하지만 정말 대혁신 의지를 보여주려면 당의 최약점인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을 우선 순위에 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데 N포 세대인 청년이나 고물가에 경악하는 가정주부, IMF 시절보다 더 팍팍하다는 소상공인을 찾았다면 한 전 위원장의 진정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대권 도전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누가 당 대표가 됐든지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로 평가받는다면 누구라도 대선 후보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며 본인의 대권 출마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당 대표가 되면 ‘대선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도 바꿀 것이라는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친한계 관계자는 “당 대표 이후에 내년 재보궐 선거를 나가 국회의원 한동훈이 되는 방안을 고민하거나 당대표 사퇴 제한 규정을 바꿔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명비어천가가 난무하고 있다. 8·18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전 대표의 연임이 유력해지자 당내에서는 ‘이재명 추앙’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나오며 민주당의 일극 체제가 완성된 모습이다.
이미 ‘이재명의 민주당’ 체제를 위해 당권-대권 분리 규정 개정(대권 1년 전 당대표 사퇴 시한 규정 변경),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정지 규정 폐지 등 맞춤형 당헌 개정을 했다. 소위 ‘개딸’(개혁의 딸)로 지칭되는 강성당원을 등에 업은 이재명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선 전당대회, 시도당위원장 선출에서 권리당원의 입김을 대폭 강화하는 작업도 모두 끝냈다.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가장 강력한 여야의 당권주자들의 행보는 이처럼 참 많이 닮아있다. 국민(민심)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대권을 잡기 위해 당권(당심) 잡기에 주력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다.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결국 독(毒)이 될 수 있다. 눈앞의 당심보다 진정으로 민심을 챙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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