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과 함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의 아바타가 검은 배경에 등장한다. 이 아바타는 이 후보의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낙연입니다”라고 말하며 실물보다 낫지는 않은지 농담도 건넨다. 그는 태극기 앞에서 “국민의 삶의 낙을 보듬고 북돋아 더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출마 선언을 예고한 곳은 공영방송도, 언론사 인터뷰도 아닌 가상현실 세계 ‘제페토’다. 이 후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오프라인 만남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가상 세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청년층과 소통하고 싶다고 한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최근 정치권의 대유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젊은층 끌어안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메타버스에 익숙한 세대가 10~20세대여서다.
가상(메타, Meta)과 현실 세계(유니버스, Universe)를 합친 용어인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없앤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이 후보 외에도 여권에서는 박용진·이광재 후보도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가운데서는 원희룡 제주지사가 메타버스에서 대선캠프를 꾸리고 출정식을 열었다.
"청년과 소통한다는 시늉만 내는 것같다"
정치인들의 제페토 활용에 대해서 청년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메타버스에 대한 이해도나 소통이 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판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2030세대에게 '친(親) 청년' 또는 '젊은 후보'라는 이미지만 주기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제페토 사용자(2억명)의 90%는 해외 이용자이며 80%는 10대로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의 앱 사용 비율은 매우 낮다.
팔로워가 약 1100명인 이낙연 후보를 제외하면 두 여권 후보의 팔로워 수는 세 자릿수를 넘기지 못했다. 가장 먼저 메타버스를 활용한 원 지사는 109명의 팔로워로 간신히 세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생 정모(24)씨는 "메타버스 앱으로 청년들과의 소통한다고 하는 일종의 과시형 마케팅이라고 생각된다"며 "젊은 유권자도 우리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앱을 활용하면서 '나도 신세대다'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혹평했다.
직장인 김모씨(27)는 "제페토라는 앱을 선택한 것은 의도한 선거 전략인 것 같은데 애초에 우리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라며 "청년들에게 실제로 관심이 있는 건지 와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통을 하고 싶은 것보다는 그저 유권자로 유세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진심부터 보여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4시간 가량 이용자가 가장 많은 이 후보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맵'에 들어가 직접 이용해봤다. 행사장 콘셉트로 꾸며진 맵에는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과 선거 공약들이 전시돼있다.
간헐적으로 1~2명 정도의 아바타들이 들어와 셀카를 찍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이크를 연결해 방문자들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답변을 하지 않아 의견은 듣지 못했다.
메타버스에 입주한 다른 후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페토 앱을 활용했다.
박용진 후보는 제페토 내에 대선캠프를 설립해 본인의 공략을 전시했고, 원희룡 후보 역시 '업글희룡월드'를 개설했다. 통상적인 사무실 콘셉트로 꾸며진 다른 후보들과 달리 원 후보의 맵은 조경을 고려한 벚꽃테마와 '업글희룡 파티룸'이 돋보였다.
바이든, '동물의 숲' 게임으로 대성공...국내는 한계 있어
지난해 실시한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당시 후보는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활용한 선거 유세를 펼쳤다.
바이든 표지판 4종을 제작해서 이용자들이 바이든 진영의 로고를 깃발과 티셔츠 등에 반영할 수 있다. 인기 게임에서 지지자들이 직접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교류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바이든 캠프는 게임 안에 바이든 섬을 개장하여 바이든 아바타와 선거 홍보물 가상 사무실 등을 구현했다. 현재 제페토를 활용한 국내 대선 후보와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나 동물의 숲은 그해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게임일 정도로 출시 후 이미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의 실접속도 많아 선거 캠페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제페토는 이 후보가 말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그 비전을 여러분 가장 가까이에서 찾아 뵙고 말씀드리겠다"는 포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전문가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메타버스 분야 권위자인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제페토라는 앱 자체가 한 방 수용인원이 16명으로 제한돼 여러 명의 목소리를 듣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플랫폼 내 이용자 간 상호작용 이벤트나 정보 수집 기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청년층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한 쌍방향 플랫폼의 활용을 추천했다. 그는 "단순히 이벤트 성격의 마케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이 앱을 왜 사용하는지에 대한 본론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박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