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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나 태아가 커갈수록 숨찬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임산부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공감할 만한 증상이었다. 여러 차례 방문한 산부인과에서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쌍둥이 임신이라 복압이 높아져서, 다른 분들보다 더 숨이 찰 수 있어요.”
그런데 손과 발이 퉁퉁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지고, 똑바로 앉아 있어도 숨은 턱턱 막혀왔다. 잠을 자는 것도, 가볍게 움직이는 것도, 심지어 먹는 것조차 힘들어져 도저히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제야 다시 찾은 산부인과에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다급한 말을 듣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대학병원에서 시행한 심장 검사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심장의 펌프 능력이 정상인의 10%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이 필요했고, 아이들은 32주 만에 서둘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길조차 순탄치 않았다. 수술 후의 불량한 예후는 물론, 최악의 경우 사망 가능성까지 있다는 잔인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아이를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이들 부부에게, 축복과 기쁨으로만 가득할 줄 알았던 출산이 뜻하지 않게 생사의 기로로 돌변한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만도 순탄하지 않았다. 수술 전부터 수술 후 예후에 대해, 상황에 따라 사망 가능성까지 있을 수 있음을 설명했다. 아이를 만나기만을 손꼽았던 이들 부부에게 뜻하지 않게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환자는 출산 직후, 쌍둥이의 얼굴을 한 번 제대로 쳐다볼 새도 없이 심장 쇼크로 인한 심정지가 발생했다. 결국 심폐체외순환장치(에크모, ECMO)를 적용해야만 했다. 문제는 심장이 멈추는 것으로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뿜어내지 못하면, 전신의 장기들이 피를 받지 못해 기능이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환자분 역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고, 콩팥 기능까지 급격히 망가져 지속적 투석기계(CRRT)를 달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심장의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다장기 부전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맞닥뜨린 또 하나의 거대한 고비는 ‘혈전(피떡)’ 문제였다. 에크모 같은 생명유지 장치들이 몸 안에 들어가면 혈전 발생 위험이 치솟는다. 이 혈전이 다른 장기의 혈관을 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항응고제를 써야 한다.
그런데 출산 직후 산모의 몸은 과다 출혈을 막기 위해 생리적으로 피가 더 잘 굳는 방향(고응고 상태)으로 변한다. 제왕절개, 다태아 임신, 비만, 고령 출산 같은 조건은 이 경향성을 더욱 부추긴다. 즉, 한쪽에서는 기계가 멈추지 않도록 “피떡이 생기지 않게” 항응고제를 쏟아부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출산 후 산모의 몸”이 피를 굳게 만들려 하는 방향으로 가고, 그야말로 출혈과 혈전 사이의 피 말리는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환자분은 항응고제(헤파린)를 지속적으로 투여했음에도 에크모 필터에 피떡이 엉겨 붙어 수시로 필터를 교체해야만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심정지 당시 발생한 폐부종과 객혈 탓에 좌측 폐 기관지마저 응고된 피로 꽉 막혀, 폐 기능마저 심각하게 떨어져 있었다.
에크모를 돌린 지 5일째, 심기능은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없었고 심한 폐부종까지 동반되었다. 결국 폐순환과 체순환을 돕기 위한 중재시술을 거친 뒤, 심장이식을 위해 우리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이송되자마자 즉각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을 진행했다. 중환자실 밖, 보호자인 남편은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핏덩이 같은 아이들과 심장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아내 사이에서 간신히 정신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듯했다.
성공적인 이식을 위해서는 심장 외의 다른 장기들이 더 이상 망가지면 안 된다. 당시 가장 시급한 것은 폐를 가득 채운 혈전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주말도, 밤낮도 없이 호흡기내과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하루 두 번씩 기관지내시경으로 미세한 혈전들까지 모조리 뽑아냈다. 에크모 관리와 수술적 치료 방향은 흉부외과와 실시간으로 상의했다. 여러 진료과가 동시에 매달린 끝에, 쪼그라들었던 좌측 폐는 조금씩 제 기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출산 후 내내 체외 순환기를 달고 진정제에 취해 자고 있던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던 날. 환자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생명유지 장치들 탓에 수술 전 뇌 CT조차 찍기 어려웠지만, 환자와 직접 눈을 맞추며 큰 뇌손상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뭉클한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지옥 같은 고통을 맨정신으로 견디게 할 수는 없었다. 지속적으로 진정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환자의 고통은 배가 되기에, 눈맞춤의 기쁨을 뒤로하고 다시 진정제를 투여해 환자를 깊은 잠에 빠뜨려야 했다. 여전히 다장기 부전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망가진 신장을 대신해 지속적 투석기(CRRT)가 돌아갔고, 기계 호흡과 에크모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기관지 혈전들을 끊임없이 제거해 나갔다. 좋아졌다가 나빠지고, 나빠졌다가 겨우 버티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미 간 기능마저 무너져 황달 수치는 정상인의 15배를 훌쩍 넘겨버렸다. 한쪽에서는 멈추지 않는 출혈이, 다른 한쪽에서는 덩어리지는 혈전이 널뛰기를 했다. 굵은 에크모 관이 삽입된 혈관들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치열한 현장에는 우리 심장이식 코디네이터들의 피땀 어린 헌신도 녹아 있었다. 코디네이터들은 촌각을 다투는 중환자실과 여러 진료과를 쉼 없이 뛰어다니며 환자의 미세한 상태 변화를 꼼꼼히 살폈다. 수혈이 필요한 순간마다 혈액은행과 조율했고, 임신과 다량 수혈로 생길 수 있는 항체 문제 때문에 이식이 가능하도록 항체를 낮추는 과정도 함께 준비했다.
무엇보다, 언제 연락이 와도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수술실, 검사실, 중환자실, 각 과 의료진 사이를 오가며 연결을 놓지 않았다. 수술에 필요한 그 복잡한 절차와 서류들을 빈틈없이 조율하는 것은 물론, 면회 시간마다 신생아중환자실과 아내의 병상 사이에서 홀로 불안에 떠는 남편을 붙잡고 다독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 것도 바로 우리 코디네이터들이었다.
환자 곁에서, 그리고 보호자 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싸움이었다. 우리는 매 순간 정성을 다했고, 병원 식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적을 기도했다. 그렇게 대기 등록을 하고 2주가량 지났을 무렵, 정말 기적처럼 심장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에도 산 너머 산이었다. 오랜 시간 투여된 진정제 탓에 환자의 섬망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아직 제 기능을 찾지 못한 신장 때문에 약 한 달간 추가적인 투석을 견뎌야만 했다.
특히 심장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식된 새 심장에 거부반응이 생기지 않도록 항체를 관리하고 감염을 막는 일이다. 환자분의 경우 수술 전후로 쏟아부은 엄청난 양의 수혈, 그리고 ‘임신’ 그 자체로 인해 이미 몸 안에 항체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이 항체들을 없애는 까다로운 작업에 각고의 공을 들여야 했다.
이 숱한 고비들이 있었지만,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덕분이었을까. 젊은 산모의 회복력은 경이로웠다. 투석을 떼고 신장 기능이 돌아왔고,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여 수술 2주 뒤에는 일반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이식 후 두 달째. 출산 후 줄곧 병상에 누워 휴대폰 사진으로만 애틋하게 바라보며 눈물짓던 쌍둥이를, 환자분은 자신의 두 팔로 온전히 품에 안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산후 심근병증은 말 그대로 임신 후반기부터 출산 후 수개월 사이에 산모의 심장 근육이 급격히 약해지는 중증 심부전이다. 평소 심장 질환이 전혀 없던 건강한 여성에게 예고 없이 찾아오며, 좌심실의 펌프 능력(박출률)이 45% 미만으로 떨어질 때 확진하게 된다.
과거에는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으나, 최근 의학계에서는 이 질환이 몇 가지 생리적 변화와 유전적 요인이 얽혀 발생한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기전은 ‘호르몬의 역설’이다. 출산 전후 산모의 뇌하수체에서는 모유 수유를 돕기 위해 ‘프로락틴(Prolactin)’ 호르몬이 다량 분비된다. 그런데 임신으로 인한 극심한 신체적 스트레스(산화 스트레스) 환경에서는 이 프로락틴이 쪼개지면서, 오히려 심장 근육 세포와 심장 혈관을 파괴하는 변형된 단백질로 작용하게 된다. 생명을 기르기 위해 분비된 호르몬이 도리어 산모의 심장을 공격하는 비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쌍둥이 임신이나 임신중독증 같은 상황에서 태반으로부터 과도하게 분비된 혈관 억제 물질(sFlt-1)이 산모의 심장 미세혈관을 좁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환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미세한 심장 유전자 변이가, ‘임신’이라는 엄청난 혈액학적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발현되면서 심장 기능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어떤 산모에게서 이러한 산후 심근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더 높을까. 임상 현장의 경험과 수많은 역학 연구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주요 위험 인자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임신성 고혈압’과 ‘전자간증(자간전증)이다. 임신 중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단백뇨가 동반되는 이 상태는 산모의 혈관 내피세포를 손상시키고, 앞서 언급한 태반의 혈관 억제 물질(sFlt-1) 분비를 폭발적으로 늘려 심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또한 ’다태아 임신(쌍둥이 등)‘과 ’다산(여러 번 출산한 경험)‘ 역시 주요한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산모의 심장이 감당해야 할 혈액량과 대사적 부하가 단태아 임신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앞선 증례에서 생사를 오갔던 김모 환자분 역시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심장에 막대한 과부하가 걸린 경우였다.
이 외에도 ’30세 이상의 고령 산모‘일수록 발생 빈도가 뚜렷하게 높아지며, 특정 인종(아프리카계 혈통 등)이나 평소 알지 못했던 미세한 유전적 감수성을 지닌 경우에도 유병률이 높게 나타난다. 임신 중 조산을 막기 위해 자궁수축 억제제 등을 장기간 투여받은 경우 역시 심부전 발생 위험을 높이는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이러한 위험 인자를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소 병원 문턱 한 번 넘어본 적 없는 20대의 건강한 초산모에게도 산후 심근병증은 예고 없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병이 진료 현장에서 특히 치명적인 이유는, 초기 증상이 임신 막달 산모들이 흔히 겪는 고충과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심장 펌프가 제 기능을 못 해 혈액이 폐로 역류하면 숨이 차고 몸이 붓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모와 심지어 의료진조차 이를 “임신 막달이라 배가 불러서”, 혹은 “쌍둥이라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그러나 자려고 누웠을 때 숨이 턱턱 막혀 앉아있어야만 호흡이 편해지거나(기립성 호흡곤란), 출산 후에도 부종이 급격히 악화되고 가만히 쉬고 있을 때조차 심하게 숨이 찬다면 이는 단순한 임신 증상이 아니다. 지체 없이 심장초음파와 심부전 혈액검사(BNP/NT-proBNP)를 통해 심장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치료 과정은 종종 뼈아픈 결단을 요구한다. 산후 심근병증으로 진단되면 강력한 심부전 약물 치료와 함께, 앞서 말한 변형된 프로락틴의 생성을 막기 위해 모유 수유를 억제하는 약을 투여하기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을 꺾어야만 산모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약물로도 심장이 회복되지 않고 멈춰버리는 최악의 급성기에는 에크모(ECMO) 등 기계적 순환 보조 장치가 동원되며, 끝내 심장이 깨어나지 않으면 유일한 선택지는 ’심장 이식‘뿐이다.
다행히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수개월 내에 심장 기능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심장이 무너졌던 환자는 다음 임신에서 질환이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고, 재발 시의 예후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특히 심장 기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후속 임신은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시도이기에 의학적으로 강하게 금기시된다. 따라서 향후 임신 계획은 반드시 중증 심부전 전문의와의 심층적인 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