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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운전은 NO” 고준위법 제약에 업계 우려
9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고준위법이 제정됐으나 일부 조항 때문에 ‘월성 2~4호기’ 등은 정상적인 계속운전이 어려우리란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36조 6항에서 원전 부지 내 고준위 방폐물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기간 예측량 이내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계속운전할 경우 저장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원전은 30~60년의 첫 설계수명이 지나도 당국의 허가를 전제로 10년 단위로 운영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정부가 지난달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모든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을 전제로 2038년까지의 전력 공급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현 고준위법으로는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국내 원전 26기 중 10기가 2030년 내 설계수명이 끝나는데, 2030년부터 주요 원전의 부지 내 저장시설이 차례로 포화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는 월성 2~4호기다. 이곳은 2026~2029년 차례로 설계수명이 끝나는데 2037년이면 부지 내 저장공간이 꽉 찬다. 특히 이들은 농축 우라늄을 쓰는 다른 경수로 원자로와 달리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여서 배출량은 더 많고 실질적 저장공간은 더 적다.
월성 2~4호기의 가동에 차질이 생기면 국내 전체 전력공급 능력이 3% 안팎 줄어들게 된다. 전력 소비가 몰리는 여름·겨울철 전력 수급 우려가 커질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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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경수로 방식이기에 월성 2~4호기와 달리 기존 저장시설을 잘 활용하면 10년 계속운전은 가능하지만, 외국 사례처럼 20~30년씩 운전기간을 늘리는 건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 제정 논의 때부터 이 같은 우려가 있었으나, 법 제정이 더 늦어지면 전체 원전 운영에도 차질을 빚으리란 위기감 속 여야가 절충하면서 우려를 법에 반영하지 못했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원칙적으로 부지 내 저장시설 내용은 기존 원자력안전법에서 다루고 고준위법은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리시설만 다뤘어야 하지만 조율 과정에서 이렇게 됐다”며 “과학기술자로선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장 법 개정 어렵지만…운영 불확실성 줄여야
고준위법이 이미 국회를 넘어 국무회의 의결을 앞둔 만큼 당장 세부 조항을 바꾸는 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고준위법을 이달 중 공포하고 올 9월께 시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시행 과정에서 이 같은 원전 운영상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원전 이용률 기준에 따라 설계수명 중 사용후핵연료 발생 예측량이 달라지는 만큼 이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부지 내 저장시설 확충이 가능하다”며 “법을 개정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렵다면 하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확실한 방법은 중간저장시설을 최대한 빨리 마련하는 것이다. 중간저장시설이 생기면 부지 내 저장시설의 고준위 방폐물을 이곳에 옮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산업부가 2021년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지선정절차 착수 후 최종처분시설 마련까지는 37년이 걸리지만, 중간저장시설은 20년이면 확보할 수 있다. 또 고준위법이 최종처분시설 마련 시한을 35년 후인 2060년으로 못 박아둔 만큼 정부는 어차피 중간·최종 시설 확보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
문 교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중간저장시설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부지 내 저장시설 문제 때문에 원전 운영 차질을 걱정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 역시 “중간저장시설 마련에 필요한 기술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상용화 단계에 있는 만큼 일정은 충분히 앞당길 수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원전 운영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