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후 이뤄지는 한전 사장의 조기 퇴진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노무현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 취임했던 이원걸 사장은 이명박정부 첫해인 2008년 퇴임했다. 안정적 경영으로 연임에 성공했던 조환익 사장도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임기를 3개월 남기고 사퇴해야 했다. 당시 일련의 과정은 산업부의 산하 공공기관장 사퇴 종용, 즉 인사권 직권남용 혐의를 받아 현재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
선장을 잃은 한전은 이정복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는 비상경영 체제를 꾸렸지만, 앞길이 막막하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정부의 요금 조정 통제 아래 2년여간 쌓인 40조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해소해야 하고, 5년에 걸쳐 25조7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역대 최대규모의 자구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이 가운데 수도권 내 대규모 산업단지 신설 계획에 맞춘 대규모 전력 공급 계획도 이행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전 직원들은 물론, 정·관계에서도 정 사장의 조기 퇴진에 대해 아쉬워 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정 사장은 30년가량 산업통상자원부에 몸담으며 2005년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립과 2013년 밀양 송전탑 건설 등 사회적 갈등이 큰 굵직한 에너지 부문 현안을 처리했던 인물이다. 산업부 차관 시절엔 정치권과의 협의 끝에 전력산업계 숙원이던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성사시켰다.
‘독배’가 된 한전 사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환익 전 사장의 조기 사퇴는 4개월의 경영 공백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를 1년여 남긴 2021년 말엔 복수 후보자를 내지 못해 한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재공모 절차를 밟았다.
한전 재무위기의 본질은 2021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 그리고 전기요금 동결 의사결정의 실질적 권한을 쥐고 있었던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희생양’을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끊어내야 한다. 국내 최대 공기업의 CEO가 전기요금 인상의 인질이 돼 쫓겨나듯이 떠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