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73년 4월 6일. 이날은 경주 ‘천마총’ 발굴 조사의 첫 삽을 뜬 날이에요. 그해 12월까지 이어진 발굴조사에서 금관 등 1만1526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어요. 금제대관을 비롯해 금으로 만든 모관, 허리띠, 관꾸미개, 귀걸이 등 지도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신구들이 발굴됐죠. 지금은 천마총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경북 경주시 황남동 155호분 발굴이었어요. 발굴 중 말다래(말의 발굽에서 튀는 흙을 막기 위해 안장 밑으로 늘어뜨린 판)인 천마도 출토 덕분에 ‘천마총’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죠.
말다래는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덧대 제작됐어요. 그 위에 순백의 천마(天馬)가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죠. 이 유물은 무덤 안에서 썩지 않고 1500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부활했어요. 당시 천마그림 말다래는 두 점이 겹쳐서 출토가 됐는데요. 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마도는 아래에 있었던 말다래(II)입니다. 위에 있었던 말다래(I)은 2014년 첫 공개 이후에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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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이 지난 유물들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에 보존처리가 필요했어요. 천마도는 두 장이 겹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위에 있었던 말다래(I)은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보존처리를 위해 약을 투입하다 천마도까지 영향이 갔죠. 처음 발견된 수습 상태도 좋지 않았는데 약품으로 조금 손상이 되면서 컨디션 회복을 위해 그동안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번에 발굴 50주년을 맞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특별전에서 9년 만에 다시 공개됩니다.
천마총 발굴 조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시작됐어요.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옛 신라인 경주를 관광 도시로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경주를 방문해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해요. 조사단의 발굴 결과 기대를 넘어서는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됐어요. 특히 광복 이후 처음으로 신라 금관이 출토돼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천마총은 온전한 신라 고분을 제대로 발굴한 첫 사례예요. 신라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고 우리나라가 문화유산의 발굴 및 보존, 활용에 눈뜨게 된 계기가 됐어요. 이보다 앞서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이 진행됐지만 17시간 만에 끝나버렸죠. 조사단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급하게 이뤄져 아쉬움을 남겼어요. 반면 천마총 발굴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어요. 때문에 우리나라 고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천마총이 발굴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발굴 50주년을 맞아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천마, 다시 만나다’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천마도 두 점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인데요. 말다래(II)는 오는 6월 11일까지, 말다래(I)은 6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전시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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