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노인 아냐' 공감 커졌지만…기준 제각각에 저항감도 여전

이지은 기자I 2025.01.20 05:20:00

■초고령사회의 역습-노인복지제도 손질 필요성 대두
법정 노인 기준 없어…50세부터 75세까지 정책별 산재
복지혜택 줄면 반발 불가피…청년층과 세대갈등 우려도
朴·文정부서도 도돌이표…초고령사회 맞아 본격 공론화

[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도래하면서 노인연령 상향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저출생과 맞물려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고령층 부양에 소요되는 비용은 급격히 늘어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평균수명이 30세가량 연장되면서 생애주기가 길어져 건강한 노인이 늘어난 것도 공감대를 키운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50세부터 75세까지 정책별로 제각각 설정돼온 노인연령 기준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막상 복지 혜택에서 배제될 경우 기존 수혜자들이 정서적 저항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서울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년층 무임승차 인원(통행량 기준)은 총 2억 3262만명에 달했다.

◇법정 노인 기준 없어…50세부터 75세까지 정책별 산재

(그래픽=김일환 기자)
65세를 노인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은 노인들 사이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71.6세로 나타났다. 이는 기대 여명 증가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풀이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로, 회원국 평균 80.3세를 웃돌아 상위권에 속했다.

다만 법정 노인의 연령 기준을 통일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연령 기준은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정한 경로우대 조항에 따라 65세로 통용되지만, 법률상 명확한 정의가 있는 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새로운 제도나 사업을 도입할 때마다 개별법과 시행령에 따라 규정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기준 국민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은 63세로 설정돼 있으나 주택을 담보로 한 역모기지인 주택연금은 55세가 돼야 가입할 수 있고, 농지를 담보로 한 농지연금(노후생활안정자금)은 60세부터가 대상이다. 노인주거복지시설의 경우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은 65세 이상이 대상인 반면 노인복지주택은 6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경로우대자에 추가로 세금을 공제해주는 연령은 70세,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고령운전자의 연령은 75세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에서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고, 같은 법의 시행령 제2조에서는 고령자를 55세 이상으로 고령자로 정의했다. 50세 이상이면 일자리 정보와 취업 상담 등을 제공하는 고령자인재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노인 연령 기준의 현황과 쟁점’ 보고서를 통해 “연령 기준의 다름으로 인해 오는 혼선과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노인복지법에서 노인 정의로 연령 기준을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면서도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서비스들은 사업마다 목적이 다르고 특징이 있으므로 각 사업에 적절한 연령 기준을 설정해야 하는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혜택 줄면 반발 불가피...청년층과 세대갈등 우려도

각종 복지 수당과 서비스가 줄어들 경우 고령층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도 까다로운 변수다. 가장 최근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인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했다. 황진수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은 “노인 무임승차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올린다면 당장 60대 초반이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며 “기초연금도 소득인정액 상위 30%를 제외하는 상황에서 부자 노인만 요금을 내게 하는 건 역린을 건드리는 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65세 이상 승객이 늘어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게 중론이다.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한노인회 등 민관 모두에서 단계적 상향 방안이 나오는 건 점진적 변화를 통해 고령층의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의 제안처럼 매해 1세씩 올린다 해도 대부분 65세 기준으로 설정된 사회보장제도 구조를 감안하면 경계에 있던 고령층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예컨대 64세 노인의 경우 이듬해 기대했던 지하철 무임승차와 철도 운임 할인, 고궁 무료입장 등과 같은 경로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유행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무료로 접종해주던 백신도 본인 스스로 돈을 내고 맞아야 하는데 독감은 평균 3만~4만원 정도이나 코로나19는 13만~15만원에 달한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도 제외된다. 정부가 매해 역대 최대 규모를 새로 쓰며 공급 규모를 늘려가고 있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이에 노인 연령 상향의 직격탄을 맞는 신규 고령층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등 계속고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동시에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취업 취약계층으로 자리 잡은 청년층의 기회만 축소시킨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추정 및 시사점’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면 연간 추가 고용 비용은 30조 2000억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청년층 근로자 90만 2000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고령화와 장기화된 경기침체 속에서 젊은 세대의 부담은 이미 커진 상태다. 통계청은 지난해 27.4명인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비)가 2050년 78.6명, 2070년 100.6명으로 늘어날 거라고 내다봤다. 세대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대적 흐름이 된 노인연령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동시에 OECD 최악의 노인빈곤율(2020년 기준 40.4%)과 노인자살율(10만명당 24.6명) 등은 저소득층을 벼랑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朴·文정부서도 도돌이표…초고령사회 맞이 본격 공론화

앞서 박근혜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에서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방안을 포함시켰고 문재인 정부도 박능후 당시 복지부 장관이 노인연령을 70세로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관련 논의는 도돌이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 진입을 계기로 올해는 노인연령 조정 논의를 본격 공론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층 진입,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 등으로 인해 사회적 수용성이 커졌다는 판단도 배경이 됐다. 다만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번 좌초됐던 고차 방정식인 만큼 세밀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부터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정부는 법·제도에 대한 개정보다는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이 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며 “정년연장, 대중교통 할인 등 노인연령 조정과 연계된 제도까지 일단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관계부처, 국회 등과도 협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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