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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렇게 기가 막힌 런웨이를 따라 걷는 게 어디 흔한 일이겠나. 비록 캔버스에 물감으로 낸 길이라고 해도 말이다. 패션을 잘 몰라도 한눈에 알아볼 순 있다. 동네 옷가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의상들이 아니란 것을. 디자인이며 컬러며 최고가 명품 브랜드를 옮겨 놓은 게 분명하다. 그 실루엣에 혹하는 건 사실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다가서 보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 모델이 없다. 죽 걸린 옷들에서 ‘잘 빠진 피트와 빵빵한 볼륨’만 남겨놓은 채, 신발도 벗어놓고 가방도 던져놓곤,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듯 훌쩍 사라져버린 거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건 이거다. ‘옷이 울고 있다!’ 하얀 눈물, 검은 눈물, 붉은 눈물 등을 쏟아내는데, 저러다가 결국 흔적도 없이 다 녹여버리는 건 아닐까. ‘유령패션’이란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구나.
“패션만큼 가시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는 건 없다. 신분을 내보이거나 감추거나, 본능을 가리거나 펼치거나, 또 계급사회의 양극화까지 제대로 비춰낸다. 게다가 매혹적이지 않은가. 미적으로 시각적으로 비주얼의 최고봉이라면 그게 바로 패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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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가까이 들이댔더랬다. 비뚤어진 문명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번에는 그 지점에 ‘작은’ 설득력을 심어보자고 했던 건데. 그렇게 찾은 소재가 패션이란다. 하나 덧붙이자면 물질만 남고 정신은 사라진 그 현상을 꼬집는 ‘유령패션’으로. “사람이 없다? 없지만 있는 거다. 존엄하고 숭고한 가치를 가진 정신성을 물질이 덮고 있어 안 보일 뿐이고.”
그렇다면 왜 굳이 옷에서 색색의 눈물까지 짜낸 건데. “과도한 욕망이 넘쳐서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표현한 거다. 물론 옷주인의 성찰이 먼저 필요하지만, 예술가가 대신 경종을 울릴 수는 있지 않은가. 가진 자만이 누리는 쾌락은 정상이 아니다.”
작가 안창홍(69). 꾸벅 짧은 인사 끝에 숨차게 몰아친 질문세례에도 그이는 차분하게 ‘모범답안’을 꺼내놨다. ‘알록달록한 색밭에 스민 서늘한 기운’에 대하여, 또 한껏 멋스럽게 차려입었으나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없는 ‘껍데기뿐인 허상’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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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걸린 옷…화려하고 서글픈 시대의 자화상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연 ‘안창홍-유령패션’ 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화려하고 서글픈 오늘 우리 시대의 자화상’쯤 될까. “화려하고 컬러풀한 겉면에 감춰진 야누스적인 이면을 들여다봤다. 이중구조를 가진 사회시스템의 양지와 음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서글픈 자화상’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흔히 말하는 ‘미술관급 전시’ 바로 그거다. 규모는 물론 완성도까지 둘 다 갖춘 작품을 내놨을 때 붙이는 타이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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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디지털 펜화’란다. 스마트폰 속 온라인 가상공간에 그린 그림을 캔버스 오프라인으로 끄집어냈고, 그것을 다시 빼내 입체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100호 규모(162×113.5㎝)의 유화 ‘유령패션’(2021·2022) 연작이 29점, 163㎝ 길이의 실물크기 입체조형물 ‘유령패션’(2022)이 3점이다. 여기에 146㎝ 길이의 부조 ‘마스크’(2019) 연작이 23점. 거대한 QLED 모니터 3대를 붙여 만든 디스플레이에서 계속 돌아가는, 작업의 단초가 된 ‘디지털 펜화’도 150여점이다. 크고 작은 드로잉 작품 85점은 그냥 덤이라고 쳐도. 아주 작정한 듯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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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특별전 귀국전’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지난해 11∼12월, 사비나미술관이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 위치한 과야사민미술관과 인류의예배당에서 ‘안창홍 특별전’을 열었던 터.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한국과 에콰도르의 문화교류였던 거다. 사실 이 문화교류의 시작은 2020년 12월 서울에서 연 전시가 먼저다. 사비나미술관에서 펼쳤던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전’이 그거다. 에콰도르의 국민화가로, 또 ‘라틴아메리카 피카소’로 불리는 과야사민의 ‘국보급’ 유화·드로잉 89점을 걸었더랬다. 당시 한겨울에, 코로나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6주 남짓한 동안 5000여명이 둘러봤다.
안 작가의 에콰도르 전은 그 답방이었던 셈. 그러니 국가 대표의 자존심을 걸고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덕분에 서울의 과야사민이 그랬듯, 키토의 안창홍도 관람객을 움직였나 보다. 코로나가 터지고 하루 10명 안팎이 전부던 과야사민미술관은 물론, 30년 전 고야 전시 이후 안 작가에게 처음 내줬다는 인류의예배당에 300∼400명씩 불러들였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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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 대접을 받았다. 오픈식에 문화장관과 각국 대사까지 총출동했더라. 하지만 이보다 더 감동스러웠던 건 그곳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였다. 한번 입장해 3~4시간씩 머물며 진중하게 보고 가더라.”
◇자본의 식민지처럼 변해가는 세상에 들이댄 날선 붓끝
낯설다. 낯설어서 강렬하다. 사실 세상의 낯섦에는 두 종류가 있다. 피해버리고 싶은 것, 빠져버리고 싶은 것. 그렇다면 이 공간은 뒤쪽이다. 슬금슬금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다가서게 되는 거다. 안 작가가 의도한 게 바로 이거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이 뒤를 돌아봤으면 하는 것. 그렇게 자본의 그늘을 헤집은 상징이 ‘유령패션’ 연작이라면, 권력의 그늘을 끄집어낸 건 ‘마스크’ 연작이었던 셈. 눈을 가리거나 혹은 놀란 토끼눈이 된, 이마에 똑같이 열쇠구멍 하나씩 낸 채 줄지어 걸려 있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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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통했을 거다. 300년 스페인 지배를 받았다는 에콰도르에서 불의·핍박에 맞서는 붓을 들고 끊임없이 고발했던 과야사민 자리에 안 작가가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의 식민지처럼 변해가는 세상에 매서운 붓끝으로 조형언어를 써내려간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말이다.
“운이 좋았다”로 작가는 지난 작업의 무게를 덜어냈다. “내 방식의 완고함이 있었는데도 이런 전시까지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렇게 튀면서도 “소외되지 않고”, 상업화랑이 유혹해대도 “품위를 지키면서”, 자본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사람 좋은 표정으로 껄껄 웃던 그이가 독백 같은 한마디를 보탰다. “복 받은 거지 뭐.” 전시는 5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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