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성 말라가는 증권사들, ELB로 개미 자금 끌어오기
1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 연초 이후 이날까지 발행된 ELB 규모는 총 13조4340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9269억원) 대비 50% 급증했다. 특히 단기물량을 대거 쏟아내는 양상이다. 만기구조를 보면 3개월 이하 초단기물이 1조6425억원으로 전년비 3802% 폭증했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물량도 2조6652억원으로 540% 늘었다. 중소형사의 발행이 크게 늘어 현대차증권과 키움증권·교보증권·유진투자증권·한화투자증권 등이 줄줄이 발행 10위권 내에 올랐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들이 고금리를 내걸고 개인투자자 자금을 끌어모으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대체로 만기가 1년이 되지 않고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ELB 투자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얹어주는 약정 금리는 7% 안팎이다. 기초자산 동향에 따른 금리 지급 조건이 있으나 맞추지 못할 가능성은 없는 수준으로, 사실상 ‘묻지마’ 고금리형 상품인 셈이다.
발행 상품 구조를 보면 한화투자증권이 코스피20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한화스마트ELB 392호의 경우 만기 6개월로 만기평가일 가격이 최초 기준가격의 600% 미만인 경우 연 6.70%를, 600% 이상인 경우 연 6.71%를 지급한다. 비슷한 시기에 발행한 SK증권·한국투자증권·메리츠증권 등의 경우도 금리지급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확보한 자금은 증권사 내부에 ‘급한 불’ 끄기에 이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LB로 끌어온 자금은 부동산 PF 관련 어음 등 차환이 막힌 곳에 돌려막기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ELB 운용 자산은 헤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맞지만 급한 증권사들이 위험자산에 붓는대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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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와 부실화 위험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소형사 중에서도 최근 부동산 PF 리스크로 휘청이는 일부 증권사들도 ELB를 통해 급한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ELB는 발행사의 신용위험이 발생하지 않으면 원금을 지급하는 금융투자상품이지만, 증권사 줄도산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하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각에서는 ELB 판매 급증 동향을 과거 발생한 ‘동양증권 사태’에 비유한다. 증권사들이 부실한 회사채·기업어음을 불완전 판매하고,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의 관리감독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본 사건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이건 사실상 금감원이 불완전판매를 방임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같은 시장 위기 상황에서 ELB를 원금보장형이라고 팔면 안 된다. 이건 개인투자자들에게 폭탄을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휘청이는 증권사들이 ELB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상황과 동양증권 사태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 증권사가 파산하면 책임질 수나 있을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ELB 대거 발행 상태가 증권사에게 금지된 수신행위와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증권사의 수신행위는 초대형IB들에게만 허용돼 있다. 발행어음을 내 수신행위를 할 수 있는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4곳 뿐이다. 투자자보호를 위해 파산 위험이 극히 적은 대형사에게만 수신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ELB를 자금조달 목적으로 쓰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발행어음 규제를 우회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규제가 마련해둔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기능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
리테일 판매액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차원에서 마련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의 ELB발행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증권사가 나중에 만기 때 지급 가능한 자금 여력이 있느냐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며 “증권사들이 ELB 발행시 발행사들이 신용등급과 유동성 상황 등을 투자자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