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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훈(60·사법연수원 13기·사진) 서울가정법원장은 ‘건강한 이혼’을 이야기한다. 그는 “부부의 헤어짐이 즐거울 수 없지만 원수처럼 헤어지면 남겨진 아이들이 받을 상처와 아픔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이혼 과정 중 자녀들의 고통에도 신경 써야”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혼인건수는 30만 7489건, 이혼건수는 11만 5889건으로 집계됐다. 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고도 3쌍 중 1쌍은 남남이 됐다. 전체 이혼건수 중 약 5분의 1(2만 2181건)은 이혼조건을 합의하지 못해 법정 다툼 끝에 헤어졌다.
여 법원장은 “이혼과정에 있는 당사자들은 종종 ‘지옥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며 “이혼 과정이 힘겹다보니 상당수 부모들은 자녀들의 고통까지 눈을 돌리지 못한다”고 했다. 부모가 마음을 추스르고 뒤늦게 자녀들을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이혼’을 만들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은 2010년부터 미성년 자녀를 둔 분쟁부부를 대상으로 ‘자녀양육안내’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14년 9월부터는 이혼 소장을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담긴 ‘주관식’에서 체크리스트형 ‘객관식’으로 바꿔 당사자들의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 법원장은 “객관식 소장을 도입한 후 조정회부가 958건(2014년)에서 2015년 1376건으로 43.6%가 증가했고 같은 기간 조정성공률도 276%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중 자녀양육안내 과정에서 분쟁 부부에게 보여주는 동영상 ‘부모’를 여러 차례 추천했다. 법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동영상을 본 분쟁부부 10명 중 6명이 도움이 됐다고 답했고 만족도는 6.72점(10점 만점)으로 집계됐다.
여 법원장은 “‘부모’ 동영상은 갈등이 있는 가정 뿐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 있는 부모와 아이들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며 “나 역시 이 동영상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부교육’ 의무화 필요…혼인신고도 부부가 함께 참석해야
2014년 접수된 이혼신청 11만 2540건 중 약 45.8%(5만 1538건)은 모두 성격차이를 이유로 들었다. 2013년 역시 성격차이 때문이라는 비율이 약 47.2%(11만 4099건 중 5만 3894건)으로 가장 많았다.
여 법원장은 “30년 가까이 달리 살아온 남녀가 처음부터 모든 게 잘 맞는다면 이상하다.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며 “이혼부부를 들여다보니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경우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 하는 등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혼을 줄이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부부교육과 부모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혼인신고 때 1시간 정도의 교육으로도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진국에서는 혼인신고를 전후해 통상 4~12시간의 가정생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여 법원장은 “이혼 위기 부부를 대상으로 의사소통교육을 실시해보면 ‘이 같은 교육을 미리 받았으면 이렇게 싸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며 “국가가 부부생활에 간섭한다는 비난도 있겠지만 혼인의 중요성과 이혼의 악영향을 생각하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 법원장은 부부가 모두 출석하지 않아도 혼인신고가 가능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법)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남편과 아내 중 한명만 가도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이 같은 허점 탓에 장난으로 써준 혼인 신고서가 등록돼 뒤늦게 무효 소송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 법원장은 “현재 혼인신고제도는 기재사항과 신분증명서 등 서류 구비 여부만을 심사하고 실제 혼인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다”며 “혼인 당사자 쌍방이 직접 출석하도록 의무화하는 동시에 혼인과 관련된 교육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인신고시 당사자가 모두 참석하게 하는 가족법 개정안과 부부교육 및 부모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상태다.
◇‘경계에 선 아이들’ 보살펴야…6호 처분시설 지원 절실
소년범에 대한 처분은 1~10호까지 있다. 8~10호는 소년원 송치로 가장 수위가 높고 7호는 병원·요양소 등에 보내는 감호처분이다. 6호 처분은 소년원에 보낼 정도의 무거운 잘못을 하지는 않았으나 다시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높고 부모 등 마땅한 보호자가 없어 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위탁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위탁시설이 받아주지 않으면 법원은 이들에 대한 처분을 미루거나 혹은 소년원에 송치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는 낙인효과가 크고 사실상 처벌에 목적을 둔 소년원에 비해 6호 처분시설이 교정효과가 훨씬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 법원장은 “전국 가정법원이 수탁하는 6호 기관은 8개에 불과하다”며 “소년부 판사가 재판하기 전에 이들 기관에 전화해 입소가 가능한 지 확인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예산문제 역시 커다란 고민거리다. 지난해 3월에는 양주시가 경기도 내 유일한 청소녀 6호 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 예산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 법원장은 “지난해 법원에서도 6호 시설에 대해 중앙정부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이 뛰어다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우리 사회가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년범 등에 대한 지원을 아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나서서 직접 모금을 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 문제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면서도 “기업들이 직접 6호 시설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사회 전반으로 청소년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여 법원장은 “소년재판의 목표는 선도다. 소년범의 가정환경을 보면 대부분 결손가정이 많다”며 “결국 자신들이 선택할 수 없었던 불우한 가정환경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준 것인데 이를 무조건 엄하게 처벌한다면 오히려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은…
1956년 경북 성주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8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1998년부터 3년간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2001년 다시 법원으로 돌아온 여 법원장은 이후 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의정부지법원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장으로 임명됐다. 판사로 시작해 변호사로 잠시 ‘외도’했다가 다시 돌아온 법조인이 법원장에 오른 것은 여 법원장이 유일하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법명은 원명(圓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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