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정작 수석대표로 있는 기간 중 6자회담 무대에 서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 달라진 대북정책 등 국내외 환경과 북한의 핵실험 도발에 이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이 진정한 대화를 원하는 그에게 쉽사리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다.
6자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고 위 대사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감당해야 할 몫은 더욱 커졌다. 보이지 않는 노력 끝에 결국 지난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남북 비핵화 1·2차 회담을 성사시켰다. “북한이 먼저 대화를 하자고 의향을 보인 첫 사례”였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리고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11월 초 러시아로 떠날 예정인 위 대사를 11일 만났다.
◇ 회담장은 전투의 끝, 작은 무대일 뿐
“우리는 대화에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대화 그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치료를 해주지 않는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6.25전쟁과 비교하자면 155마일 전선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는 벌어지고 있고, 협상을 하는 판문점은 그 가운데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피흘리는 전투를 보지 않고 판문점만을 봐요. 하지만 장외 전투가 결국 휴전 회담의 내용을 결정지었다는 걸 이해해야 북핵 문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첫 마디는 `대화`라는 단어였다. 수석대표로 있던 기간 내내 “왜 6자회담을 열지도 못하느냐”,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수많은 질책과 의심을 감수해야 했던 그다. 하지만 대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6자회담 개최 여부 자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틀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간 문제 ▲중국(북중간) 문제 ▲북한 내부의 문제라는 기본틀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간 문제는 물론이고 중국과 북한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북한 후계자 문제 등 내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복합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판단이 서야 비로소 의미있는 대화라는 게 가능합니다. 보여주기식 대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북핵 문제 - 천안함·연평도 분리대응` 관철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남북은 사실상 완전한 빗장을 치는 듯 했다. 당장 북한은 지난 5월 `남북 정상회담을 겨냥한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폭로하면서 “남북 대화는 절대 없다”고 큰소리 쳤다. 하지만 두 달 뒤인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차 남북 비핵화 회담이 열렸다. 곧이어 북미 회담(7월 뉴욕) 및 제2차 남북 비핵화 회담(9월 베이징)이 잇달아 열렸다. 위 대사의 말을 빌리자면 `천안함의 희생`과 `대화와 압박`이라는 외교적 접근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대화와 압박은 함께 가는 겁니다. 상대방은 격투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대화하겠다면서 링 위에 한손을 묶어놓고 건투만 할 수는 없잖아요. 외교에서 대화와 압박 중 어느 한가지를 완전히 배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위 대사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으면서 북한의 2차 핵실험, 천안함·연평도 등으로 대북 압박 국면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와 천안함·연평도의 분리접근`을 주장했다.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한미일간 공조강화, 중국·러시아에 대한 설득노력 등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최근 대화의 장이 마련된 배경에 천안함의 희생도 있었다”고 표현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당근`을 마련했던 과거에서 탈피, `대화와 압박` 기조 속에 진행된 강경대응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비핵화 全과정 스케줄표 만들어야… “쉬운 것 먼저” 방식은 실패
“더 이상 북한의 살라미 전술(이익 극대화를 위해 하나의 전략을 여러 개의 카드로 나눠 단계적으로 쓰는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한 휴전 협정이 어렵다고 일단 동부 전선만 먼저 휴전하고, 서부 전선은 나중에 휴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되겠냐고 냉소합니다. 너무 어렵고 과정이 지루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6.25 휴전도 그런 지루한 과정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지난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선언` 이후 `2.13 이행 합의안`등 단계적 이행계획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위 대사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핵시설 중단 등 첫 단계부터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단계까지 전 과정을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모든 과정을 합의하더라도 이행은 당연히 단계적일 수밖에 없다.
위 대사는 이번 최근 2차례 이뤄진 남북 비핵화 회담에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 중심성(centurality)`을 자리매김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한반도 문제는 당연히 남북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사람들은 `통미봉남`을 못 봐서 안달인 듯 하지만(웃음) 남북 대화없이 북미 대화는 없다는 기조를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난 1,2차 비핵화 회담이 상당히 생산적이고 유익했다고 평가한다. 북한이 가지고 있던 의구심도 어느 정도 풀렸다는 평가다. 특히 북한에 요구한 사전 조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미일은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대량 살상무기(WMD) 실험 모라토리엄 등 `사전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에서 늘 그랬듯 변수는 앞으로 많다. 우선 우리 내부에서 남북대화 기조를 끌고 나갈 동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또 미국의 정서와 의지도 중요하다.
한미 양국은 모두 내년에 본격적인 선거를 앞두고 있다. 2008년을 연상시키는 경제위기 재발 우려도 심심치않게 들린다. 외교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제외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현재의 대화 모드를 언제까지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다.
위 대사는 강조한다. “북핵 문제는 역사적이고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본질을 봐야 합니다. 회담장에 들어가서 이거 줄게, 저거 내놔라 식으로 절대 풀릴 수 없습니다. 과거 우리가 실패했다면 반면교사 삼아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내외 환경을 보는 총체적 시각, 남북이 중심이 되는 대화는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