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삼국지]후발주자 K바이오, 제형변경으로 글로벌 시장 우회 공략③

나은경 기자I 2025.01.15 09:37:14

제형변경, 확장가능성 크고 ‘가성비’ 좋아
연구개발 투자규모 작은 한국서 현실성↑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비만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장진입을 위해 우회전술을 쓰는 국내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과 품이 드는 신약개발 대신 글로벌 빅파마와 파트너십을 맺고 기존에 개발된 비만약의 편의성 등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개발 기술을 가진 인벤티지랩(389470)과 마이크로니들(미세바늘) 패치 개발 기술을 가진 라파스(214260) 등이 이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 (사진=AFP)


1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종료된 대원제약(003220)의 세마글루타이드의 마이크로니들 패치제 제형변경을 위한 1상 임상시험결과보고서(CSR)가 조만간 나온다. 대원제약이 자체적으로 만든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DW-1022를 라파스의 용해성 마이크로니들 패치로 만들었을 때의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 생체이용률을 평가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로 만든 용해성 마이크로니들 패치와의 비교 투약도 진행됐다.

대원제약은 이번 임상으로 오리지널약인 위고비와 DW-1022를 비교해 DW-1022가 열등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게 목표다. 라파스 입장에서는 위고비에서든, DW-1022에서든 자신의 마이크로니들패치 기술의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만 확인하면 글로벌 파트너십을 위한 길이 열린다. 실제로 정도현 라파스 대표이사는 이데일리에 “비만약 원료의약품(API)을 가진 다른 제약사들과 접촉 중이며, 지금 진행 중인 (DW-1022의) 임상 1상 결과가 나오면 본격적인 파트너십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벤티지랩은 자사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기술을 비만약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 비만약 원료의약품을 보유한 제약사와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다. 공개된 계약만 유한양행과 베링거 인겔하임 두 곳이다. IVL-드럭플루이딕은 혈중 약물지속기간을 늘리는 기술로, 주사제를 피하주사할 경우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원형 입자(미립구)인 마이크로스피어들이 체내에서 천천히 분해돼 목표기간 동안 약물이 방출된다. 마이크로스피어 기반 플랫폼은 펩타이드 의약품의 효능을 가장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인벤티지랩은 자사 플랫폼 기술의 또 다른 한 축인 IVL-진플루이딕을 활용한 먹는 비만약 개발도 진행 중이다. IVL-진플루이딕은 확장성이 크고 재현성 확보, 대량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펩타이드 기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제제 개발에 적용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347850)이나 일동제약(249420)의 자회사 유노비아가 자체적으로 경구 복용시 생체이용률이 높은 비만약 신규 물질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이밖에 펩트론(087010)도 세마글루타이드의 투약 간격을 1주일에서 1개월로 늘린 주사제를 개발하고 있다. 펩트론은 PT403의 임상 1상을 연내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지투지바이오도 ‘이노램프’라는 플랫폼 기술로 투약 주기를 월 1회나 2~3개월로 연장하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개발하고 있다. 동국제약(086450)도 한 번 투약에 약효가 2~3개월 지속되는 장기지속형 비만약 개발 계획을 밝혔다.

이 같은 전략의 가장 큰 장점은 확장가능성이다. 당장은 특허만료 시기가 가장 앞선 세마글루타이드가 주된 제형변경 대상이지만 상용화된 다른 비만약은 물론, 현재 개발 중이거나 앞으로 개발될 다른 비만약 후보물질도 플랫폼 기술만 적용하면 제형변경이 가능할 수 있다. 기술 자체를 플랫폼으로 진화시켜 개별 제약사들과 추가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원제약과 손잡고 붙이는 비만약을 개발 중인 라파스가 다른 제약사들과의 협업 가능성을 지속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벤티지랩은 이미 두 곳의 제약사와 공동개발을 진행 중이며, 플랫폼 자체의 기술수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이사는 “우리는 생산기술 자체를 플랫폼화해 라이선싱할 수 있다는 차별점이 있다”며 “IVL-드럭플루이딕과 IVL-진플루이딕 모두 비독점 플랫폼 형태의 기술수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장점은 아예 신규물질을 개발하는 것보다 개발 기간과 절차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약효와 안전성이 입증된 성분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이크로니들 패치제 임상시 임상 1상에서 동일한 원료의약품(API)을 가진 기허가 의약품과 동등한 수준의 약동학을 보이기만 한다면 임상 2상을 생략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임상만 100개를 넘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GLP-1 비만약 개발 열기가 세계적으로 뜨겁다”며 “회사의 자금력이 좋고 후보물질의 과학적 증거가 튼튼해 경쟁력이 확실하다면 직접 신약개발이라는 승부수를 던져볼 수 있다. 하지만 GLP-1 비만약 개발이 과열된 시장 상황과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미국, 유럽보다 작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플랫폼이 있다면 제형변경처럼 개량신약의 루트로 접근하는 것이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 관점에서 현실성 있는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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