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병에 안 걸려서 쓸 일이 없으면 좋은 거구요. 혹시라도 (제대혈로 치료할 수 있는) 병에 걸리면 이것만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지난 2010년 아들에게 자가 제대혈 이식을 진행했던 임수경(53세)씨는 아들이 투병생활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14년 전 그날 이후 임씨는 ‘제대혈 홍보대사’가 돼 주변에 임신부를 만날 때면 제대혈 보관서비스를 꼭 생각해보라며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고 했다.
“이제 형제자매를 여럿 낳지 않잖아요. 예전엔 자녀 중 하나가 병에 걸리면 다른 자녀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선택지가 사라진 거예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제대혈 보관 필요성은 더 커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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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에도 제대혈 시장은 ‘쑥쑥’ 큰다
실제로 매년 합계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제대혈 보관업체들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대표 사업자인 메디포스트의 지난해 제대혈 사업 매출액이 327억원이다. 3년 만에 56% 늘었다(2020년 210억원). 같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0.84명에서 0.72명으로 줄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제대혈 보관건수는 2만1771건으로 전년 대비 6% 늘었다. 이 증가율은 지난 5년(2017~2021년) 중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향후 활용범위가 확대되면서 보관제대혈의 미래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뇌질환 등에 제대혈 이식을 치료법으로 시도하는 사례가 많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얼라이어드 마켓리서치는 글로벌 제대혈은행 시장이 2020년엔 13억 달러(약1조8000억원)였지만 오는 2030년에는 45억 달러(약 6조2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혈액질환서 뇌질환까지…미래가치 커져
제대혈이란 산모가 신생아를 낳을 때 분리된 탯줄과 태반 속에 존재하는 혈액을 말한다. 제대혈 안에는 줄기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어 여러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제대혈 속 줄기세포는 골수나 다른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와 비교해 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대혈에 들어있는 줄기세포 중 대표적인 것이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 △연골, 뼈, 근육을 만들어내는 ‘간엽줄기세포’ △바이러스와 세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다.
과거에는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이나 재생불량성빈혈과 같은 혈액질환 치료에 쓰이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많았지만, 현재는 이식·치료 기술의 발달로 국내외에서 뇌성마비, 소아당뇨, 발달장애, 자폐증 등에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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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포스트의 제대혈은행 셀트리의 박정희 제대혈사업부 제대혈교육팀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국내에서도 제대혈 이식을 다양한 질병의 치료법으로 확장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며 “첨단 재생의료 및 첨단 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생법) 개정으로 제대혈 이식이 가능해진 종합병원, 의원이 크게 늘어났으므로 앞으로는 제대혈 활용가치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줄기세포를 이식하려면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해야 하는데, 제대혈 중 조혈모세포의 HLA는 신생아 본인과는 100% 일치하고, 형제·자매 사이 일치 확률도 25%로 높다. 부모의 HLA와 자녀 제대혈의 HLA가 일치할 확률도 50%나 된다. 타인과 나의 HLA가 일치할 확률이 2만분의 1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제대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2가지
제대혈 보관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은 출산시 한 번뿐이어서 인지 제대혈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대혈에 대한 오해도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장 대표적인 제대혈에 대한 오해 2가지로 △보관된 제대혈에 대한 부적격 폐기 우려 △제대혈 이식이 불가능한 백혈병 등이 있고, 실제 제대혈 이용건수도 보관건수 대비 턱없이 적어 실제 사용범위는 너무 좁은 것 아니냐는 인식 등을 꼽았다.
먼저 보관된 제대혈에 대한 부적격 폐기 우려에 대해 최수진 메디포스트 제대혈은행장은 “정작 필요할 때 보관된 제대혈이 부적격으로 폐기된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했다. 최 은행장은 “제대혈을 폐기하는 경우는 고객 의사로 진행된 계약기간의 만료에 의한 것이거나, 보관 전 산모의 의학적 병력이 발견됐거나 혈액 채취 시 오염으로 세균 검출이 돼 보관이 부적합할 경우의 두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면 이에 앞서 고객에게 연장·폐기 여부에 대한 사전안내가 나가고 고객의 선택에 따라 폐기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적합한 제대혈은 본격적인 보관 이전에 약 1개월의 검사기간을 거쳐 부적합 여부를 판별하고 제대혈 보관법령에 따라 보관 전 안내 후 폐기가 진행된다. 이 경우에 해당되면 보관 금액도 100% 환불된다”고 강조했다.
제대혈 보관사업은 지난 2011년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2년마다 관리·감독 심사를 진행,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특히 영하 196℃의 액체질소 상태에서 엄격한 관리·감독 아래 보관되는 제대혈이 보관상의 감염으로 폐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제대혈 이식이 불가능한 백혈병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최 은행장은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원인이 밝혀져 자가 제대혈 이식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백혈병은 전체 백혈병 중에서도 극히 적은 극소수의 경우에 국한된다”며 “이를 제외한 일반적인 백혈병과 악성 혈액질환에서는 자가 제대혈 조혈모세포이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울러 제대혈 이용건수가 보관건수 대비 너무 적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제대혈을 보관한 사람이 특정 질병에 걸리고, 제대혈을 치료법으로 선택하는 경우여야 하므로 통계적으로 주변에서 사용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최근 제대혈 보관 건수가 늘고 있지만 아직 전체 출생아 수 대비 보관 건수는 낮은 수준이라 한계가 있다. 제대혈 보관 건수가 늘어난다면 이용률도 당연히 함께 늘 것이고 앞으로 제대혈을 활용한 치료 가능 질환도 꾸준히 늘고 있으므로 향후 사용 확률은 더 높아지고 제대혈 보관서비스도 보편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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