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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 미술평론가] 린톈먀오(林天苗·62)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의 여성작가 중 하나다. 환갑을 넘긴 그녀의 세대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존재다. 요즘에야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중국 여성미술가들이 여럿 있지만, 1990년대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한 중국 여성작가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대 주목받았던 다수의 여성미술가가 그랬듯이, 린톈먀오 또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단, 그녀만의 방식으로.
‘린톈먀오’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이란 재료다. 주로 여성이 집에서 옷이나 이불 등을 꿰맬 때 사용하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재료를 그녀는 꾸준히 사용해 왔다. 작업 초반에는 집에서 사용하는 가사 도구(냄비나 가위 따위)를 실로 칭칭 감아 바닥에 늘어놓았고, 최근에는 원하는 모양(예를 들면 인체의 뼈)을 만들어 역시 실로 칭칭 싸맨다.
실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린톈먀오의 어머니는 종종 어린 딸이 집안일을 돕게 했는데, 린톈먀오가 자주 했던 일은 어머니가 뜨개질하는 동안 실뭉치를 들고 있거나 흐트러진 실패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미술가가 돼 다시 실뭉치를 조우했을 때, 그녀는 이것이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린톈먀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배지’(2011∼2012)는 실과 관련된 활동, 다시 말해 자수를 작품의 주요 방법으로 사용한 거대 설치작업이다. 작품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십 개의 자수틀로 구성돼 있고, 각 자수틀에는 ‘여성’을 뜻하는 수많은 단어가 영어와 중국어로 수놓여 있다. 그녀의 단어는 사전에 등장하는 공식적인 언어와 그렇지 않은 비속어, 또 신조어까지 포괄한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여자, 여성, 계집, 미스코리아, 된장녀, 맘충 정도 될까. 조신한 여성이 아름다운 꽃을 수놓던 자수라는 방법으로 ‘비치’(Bitch) 같은 단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블랙유머 같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이 단어들을 읽어주는 목소리도 들린다. ‘요즘 작가’답게 사운드도 첨가한 것이다.
◇여성미술가로 규정되기 원치 않은 여성미술가
얼마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으면 ‘여성’이란 단어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린톈먀오는 스스로를 ‘여성미술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렇게 규정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여성주의’에 대해 묻더란다. 그 질문들이 그녀로 하여금 ‘여성’, 또 ‘여성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좋은 미술가란 한 번 품은 질문에 대해서 끝을 보는 법. 내친김에 린톈먀오는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여기는지, 그 생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리서치에 착수하면서 린톈먀오는 사전에서 여성이란 단어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했고,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중국어사전에 여성을 뜻하는 단어만 200여개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전에 아직 기재되지 않은 신조어는 위챗이나 웹툰 등 인터넷을 이용해 수집했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린톈먀오는 100년 사이 여성과 관련된 단어 중 많은 것이 사라졌고, 동시에 새로운 단어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알게 됐다. 거의 매주, 새로운 표현이 생겨난 셈이었다. 지금까지 린톈먀오가 수집한 단어는 약 900개. 이 중 100개 남짓한 단어로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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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진행하면서 린톈먀오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단어가 대개 남자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 주로 남자였으니 이해가 갈 법한데, 최근에도 마찬가지라는 점은 이상했다.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할 수는 없는가,’ 린톈먀오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답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여성미술가’란 수식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으며 자신에 대해 정의 내린다는 것이 어떻게 여성에게만 필요한 일이겠나.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디에서 행복을 찾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린톈먀오의 ‘또렷하게’(포커스 프린트) 시리즈는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보는 듯하다. 일련의 초상사진 위에 바느질과 자수로 실을 놓고, 머리카락을 붙여 만든 이 작업은 ‘또렷하게’란 제목과는 달리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다. 설명을 읽지 않거나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사람 얼굴의 형상이 있는지도 알아채기가 어렵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품 안에서 눈과 눈썹, 코의 위치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인지는 당최 알기가 어렵다. 성격, 직업은커녕 성별이나 연령조차 짐작이 안 된다.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라는 존재다.
그래도 린톈먀오는 자신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은 일찍이 알아차렸던 편이다. 그중 하나는 본인은 꼭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예술의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통미술을 했던 아버지, 무용가였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일찌감치 알았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감시 심했던 1990년대 ‘오픈 스튜디오’ 열어 게릴라 전시
지금 린톈먀오는 설치와 사진, 바느질과 자수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녀에게 낯선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문화대혁명의 그늘 아래서 보냈기에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선전 포스터가 전부였고, 이후 베이징 미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사실적인 회화를 배웠을 뿐이다. 사진, 설치, 퍼포먼스 같은 동시대 미술의 문법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겼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였다. 기상천외한 뉴욕의 아트신을 보며 린톈먀오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임을 선명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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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후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5년 린톈먀오가 베이징으로 돌아왔을 때 중국 정부의 규제는 생각보다 심했다. 전시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고, 전시를 단독으로 기획해서는 체포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난관을 뚫기 위해 린톈먀오는 남편과 함께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다. 작가의 작업실을 때때로 대중에게 오픈하는 이 방식은 뉴욕에서는 이미 흔했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안도 없었다. 린톈먀오는 오픈 스튜디오를 감행했고, 전화를 일일이 돌려 사람들을 초대했다. 이를 여러 번 반복했고, 많게는 200명이 모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든 이벤트는 고작 2∼3시간 정도였다. 게릴라전으로 진행하며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피했던 거다.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린톈먀오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알았다. 그래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뤄나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며 린톈먀오는 인내와 참을성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녹록지 않은 세월 동안 꾸준히 실을 감고 수를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배운 인내심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 덕분에 린톈먀오는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오늘도 미술사에 수놓아지고 있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