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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2011년 5월. 제13대 국립민속박물관장 공모 결과가 나왔다. 신임관장의 이름을 들은 박물관 직원은 다들 놀랐다. 외부 인사가 아닌 박물관 내부 인사가 새로운 관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임 관장의 나이는 49세. 40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박물관 내 민속연구과장에서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에 오른 천진기(55)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여러모로 화제를 뿌리며 취임했다. 40대 관장이란 타이틀 외에도 최초의 민속학과 출신 관장이란 점도 주목받았다. 이후 햇수로 6년 동안 정권이 바뀌고 문화재청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유관기관의 수장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천 관장은 여전히 국립민속박물관을 이끌며 박물관의 변화와 변신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그간 숙원이던 박물관의 수장고와 본관 신축에 대한 구체적인 예산까지 따냈다. 천 관장을 동짓날 즈음에 만났다.
◇“과거 추억을 더듬는데 머물러선 안돼”
천 관장은 취임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과거의 추억을 더듬거리는 데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한국 전통문화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젊은 관장으로서 박물관 사람들과 화통하게 소통하면서 함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로 박물관에 첫발을 디딘 후 20여년간 박물관에서 실무를 익힌 천 관장은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많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천 관장은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박물관의 정체성과 운영철학, 방향성을 제시하고 직원을 설득하는 일이다. 박물관은 유물을 관리하고 보존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조직이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고궁박물관 같은 기관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생활을 보여주는 곳이고 과거의 세시풍속 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곳이어야 한다.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해야 한다.”
◇24절기 세시풍속 행사 마당서 펼쳐
천 관장이 취임 후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이었다. 설과 추석, 동지와 단오 등 24절기 중 주요 절기마다 관련 세시풍속 행사를 박물관 내 마당 등에서 펼쳤다. 설에는 토정비결을 봐주고 윷놀이 판을 열었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동지에는 동지고사를 지내고 팥죽을 쒀 관람객과 나눠 먹었다. 단오에는 창포물에 머리 감는 행사를 열었다. 전시와 연구 위주의 박물관 운영에 익숙했던 직원들은 곤혹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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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관람객 수 가파르게 상승
실제로 천 관장의 취임 이후 국립민속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상승 곡선을 보였다. 2011년 한 해 동안 234만명이던 관람객은 2012년 264만명으로 늘어났고 2013년에는 270만명, 2014년에는 327만명까지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메르스사태로 276만명까지 떨어졌지만 올해는 지난 15일까지 263만명 정도가 찾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징은 관람객 가운데 특히 외국인관람객이 많다는 점이다. 경복궁 안에 위치한 입지적 장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해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찾고 있다.
천 관장은 “관람객 중 아시아권 외국인관람객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이런 기관의 특성을 고려해 다문화 민속에 대한 전시·연구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권 내 민속학박물관으로서 앞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년에는 아시아의 맛과 향에 관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맛있는 박물관’ 추진 막혀 아쉬워
기획에도 변화를 주었다. 시민 큐레이터와 객원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해 학문적인 시각을 탈피한 박물관 전시를 기획했다. 천 관장은 “박물관의 변신은 무죄라는 게 평소 소신”이라며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박물관 스스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게 박물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청바지 전’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 ‘청바지 전’은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광산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탄생해 세계인의 일상복이 된 청바지의 민속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전시였다. 시대별 청바지 100여벌과 광고영상, 자료 등을 망라해 파격을 일으켰다.
천 관장이 추진하려다가 하지 못한 일은 ‘맛있는 박물관’ 만들기다. 식품위생법 등 여러 제재로 박물관 고유의 ‘맛집’을 만들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게 계속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는 “민속은 결국 우리 일상의 의·식·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우리 민족의 다양한 식생활을 본 외국인관람객이 바로 박물관 내 한정식집에서 이를 맛본다면 한국을 알리는 효과는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 관장은 “과거에는 박물관이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고 오래된 유물을 선별해 전시하는 공간으로만 생각했다”며 “하지만 박물관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이자 미래에 영감을 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지 않는다면 관람객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랜 기간 조직의 수장으로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을 테다. 천 관장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은 장기적인 계획과 운영철학이 조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아무래도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기관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답했다. 다만 “임기가 없는 별정직이라 언제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소 있다”며 “어차피 관장을 마쳐도 본업인 학예직으로 돌아갈 수 있어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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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까지 다녔다. 안동대 민속학과 2회 졸업생으로 영남대 대학원에서 민속학 전공으로 석사를, 중앙대 대학원에서 민속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로 출발해 박물관에서 외길을 걸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와 문화재관리국 예능민속연구실, 국립민속박믈관 민속연구과장을 거쳐 2011년 5월 제13대 국립민속박물관장에 올랐다. 논문으로 ‘한국 띠동물 상징체계 연구’ 등이 있고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한국동물민속론’ 등의 저서로 국내 동물민속학의 권위자로 꼽힌다. 관장에 오르기 전에는 ‘12지신’ 전문가로 신년이면 강연과 각종 기고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