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로슈는 자사 홈페이지에 자체 개발 CGM인 ‘아큐-첵 스마트 가이드 CGM 솔루션’(Accu-Chek® SmartGuide CGM 솔루션·이하 ‘아큐-첵 CGM’)이 유럽 CE(통합규격인증마크)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웨어러블 센서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구성된 이 제품은 인슐린 치료를 받고 있는 18세 이상의 1·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로슈는 인공지능(AI)을 아큐-첵 CGM에 탑재해 향후 두 시간 동안의 포도당 수치, 30분 이내의 저혈당 위험도, 야간 저혈당 위험도 등을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BGM 강자 로슈, CGM 시장에도 출사표
로슈는 체외진단 의료기기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이지만, CGM 개발에는 난항을 겪어왔다. 로슈는 지난 2017년 이식형 CGM 개발사인 미국 센서오닉스에 투자하는 등 CGM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최초의 CGM 통합형 시스템인 미국 메드트로닉의 ‘가디언 시스템’이 미국 시장에 2009년 출시됐음을 감안하면 로슈의 진입은 느린 편이다. CE 인증으로 따지면 국내 기업 아이센스보다도 느리다. 아이센스는 지난 2월 국산 CGM으로는 최초로 ‘케어센스 에어’(CareSens Air)의 CE 인증을 받았고 후속 제품인 ‘케어센스 에어2’의 CE 인증도 때를 노리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지닌 로슈의 시장 진입으로 미국 기업들이 과점 중인 글로벌 CGM 시장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로슈는 자가혈당측정기(BGM) ‘아큐-첵’이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혈당측정기 시장에서 글로벌 영업망과 브랜드 인지도가 탄탄하다. CGM이 추가되면서 로슈의 통합 맞춤형 당뇨 관리(iPDM) 솔루션으로 일컬어지는 당뇨관리생태계도 완성된 모습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 아큐-첵 CGM이 기존 제품 대비 특별한 기술적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어 시장을 뒤흔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신 빅 플레이어의 참전이 CGM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CGM 시장은 2021년 66억 달러(약 9조원)에서 연평균 17% 성장해 2030년 317억 달러(약 4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글로벌 혈당측정기 시장에서는 CGM이 55%를 꿰차면서 45%의 BGM을 넘어서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로슈가 CGM 개발에 지속적으로 도전한 것도 CGM 시장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글루카곤 유사펩티드(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들이 인기를 끌면서 대체재로 인식되는 CGM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한때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만치료제와 CGM이 서로 보완재로 작용해 매출에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
◇아이센스 “CGM 후속제품, 로슈 덕 기대”
로슈는 아큐-첵 CGM의 CE 인증을 시작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르면 2027년 미국 시장 진입을 목표로 FDA 허가를 준비 중인 아이센스와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센스는 로슈의 CE 인증 덕에 케어센스 에어2의 CE 인증 절차가 간소화될 수도 있고, 로슈의 미국 시장 진입은 유럽 시장 진입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남학현 아이센스 대표이사는 “로슈의 아큐-첵 CGM이 이번에 유럽에서 CE 인증을 받으면서 굉장히 간소화된 임상시험 절차를 따른 것으로 안다”며 “케어센스 에어2가 CE 인증을 받을 때 우리도 로슈의 선례를 활용하면 유럽에서의 임상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학현 대표는 “최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당뇨병치료최신기술학회(ATTD) 현장에서 ‘아큐-첵 CGM이 CE 인증을 받으면 어느 나라에 가장 먼저 출시할 거냐’는 질문이 로슈를 향해 나왔고, 이에 로슈 측 담당자가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 약 1년 간 테스트 마케팅을 진행한 뒤 제품을 본격 출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며 “당시 답변을 토대로 보면 로슈의 아큐-첵 CGM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판하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술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남 대표는 “CGM은 종합예술인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센서 기술과 세포간액(세포간질액)의 포도당 농도를 토대로 한 정확한 혈당농도 예측력”이라고 했다. 혈당은 혈액 속에 함유된 포도당을 의미하는 것인데, CGM의 짧은 바늘은 혈관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세포간액까지만 들어가므로 혈당을 직접 재지 못한다. 대신 혈당 농도는 세포간액에 20분 후 반영되므로 CGM은 이를 감안해 세포간액의 데이터로 실제 혈당을 예측해야 한다.
그는 “이 두 가지 기술 때문에 신규 개발사들에 진입장벽이 생기는 것이고 우리도 이 기술을 얻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경쟁사가 단기에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글로벌 CGM 시장은 미국 애보트와 덱스콤, 메드트로닉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아이센스는 미국에서 애보트, 덱스콤, 메드트로닉에 이어 네 번째 CGM 공급사 자리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