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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증시 충격”…비트코인 ETF 금지 ‘금융위 속내’[최훈길의뒷담화]

최훈길 기자I 2024.01.14 06:00:00

공개적 이유는 현행법·기존 정부 입장 위배
속내는 머니무브로 한국 증시 타격 우려돼
SEC “코인 리스크”, 투자자 보호책 고민도
단기수익 노린 韓 증권사 수수료 장사 제동
“금융위 틀렸다” 반론도, 정무위 논의 주목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금융위원회가 대한민국을 금융후진국으로 만드는구나”, “세상은 변해가는데 정부가 발목 잡네”, “무능하고 우둔한 관료들”, “꼰대 정신 버리고 시대 변화에 따르자”.

국내 증권사들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중개를 금지한 금융위원회에 대한 이데일리 기사에 이같은 댓글들이 잇따라 달렸습니다. 투자자들은 “금융정책이 후진국”이라며 금융위의 금지 방침에 반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금융위가 유권해석을 잘못했다”며 반론도 제기했습니다. 기대감이 컸던 시장은 급랭하는 분위기이구요.

그런데 금융위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손 놓고 있다가 부랴부랴 일단 틀어막은 걸까요? 1440만명(2022년말 기준)에 달하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본시장 정책인데, 정말 졸속으로 결정했을까요? 관련해 금융위를 취재한 결과,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를 금지한 데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오늘 뒷담화에서는 금융위에서 밝힌 2가지 명시적 이유와 3가지 속내를 정리해봤습니다.

◇비트코인 ETF 금지, 2가지 명시적 이유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금융위는 지난 11일 밤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국내 증권사가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 및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금지한 2가지 명시적 이유는 ‘기존 정부 입장’, ‘현행법 위배’입니다.

금융위가 금지한 이유를 보면 첫째로는 자본시장법 위배입니다.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 또는 지수 변화에 연동에 운용됩니다. 자본시장법 제4조에 따르면 기초자산은 △금융투자상품 △국내외 통화 △일반상품(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광산물·에너지 등) 등입니다. 비트코인은 현행 자본시장법상 이같은 기초자산 범주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따라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자본시장법에 따라 투자 중개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금융위 입장입니다.

정부는 2017년 12월13일 관계부처 논의를 거쳐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자료=국무조정실 등)
둘째, 기존 정부 입장에 대한 위배입니다. 금융위는 “기존의 정부 입장이란 2017년 12월13일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책은 금융위,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법무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세청, 한국은행이 참여해 마련한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제도권 금융회사의 가상통화 신규 투자가 투기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를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대통령실이나 관계부처 논의 과정에서 이같은 정부 입장에 대한 수정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독단적으로 ‘금융정책 기조’를 뒤집고,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속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비트코인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기업이 많지만, 주식시장은 매우 저평가돼 있다”며 “임기 중 자본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이같은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금융위의 속내, 고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비트코인 현물 ETF로 인한 ‘머니무브’가 한국 증시에 미칠 충격입니다. 금융위는 코인 시장에 ‘뜨거운 불장’이 지펴지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가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코인 급등세를 기대하며 증시를 떠나면 증시 타격뿐 아니라 기업들의 어닝쇼크를 비롯한 자금 이탈 우려도 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

특히 최근 들어 대통령실과 금융위, 금감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치로 잇단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관련 정책은 작년 11월 공매도 전면 금지(MM·LP 제외) 및 제도개선, 12월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종목당 10억원→50억원), 올해 1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발표 등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역대 대통령 최초로 한국거래소의 주식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같은 일련의 ‘증시 활성화’ 대책과 결이 다른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당장 승인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SEC 홈페이지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SEC)
두번째 속내는 비트코인 리스크입니다. ‘미국은 허용했고 내 자산을 내가 코인 투자로 불리겠다는 게 왜 막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관련해 금융위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면서 발표한 게리 겐슬러 위원장의 성명서를 주목했습니다.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은 주로 랜섬웨어, 자금 세탁, 제재 회피, 테러 자금 조달을 포함한 불법 활동에도 사용되는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과 가상자산과 연결된 상품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위험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가상자산 시장 리스크가 상당한데 비트코인 현물 ETF까지 허용하면서 투자자 리스크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게 금융위 입장입니다.

◇증권사 수수료 장사 주시하는 금융위

세번째 속내는 증권사의 수수료 장사에 대한 우려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증시를 위축시키고, 가상자산 투자로 인한 투자자 손실 리스크가 큰데도 증권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뛰어들고자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투자자들의 다양한 투자 선택지를 넓히고 새로운 투자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일까요? 금융위는 이같은 취지를 전면 부인하지는 않지만, 증권사들이 단기적인 수수료 수익을 좇아가는 행태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태영건설(009410) 워크아웃을 비롯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홍콩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까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리스크에 주요 증권사들의 자금이 물려 있습니다. 게다가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 잔고도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빚투도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빚투가 늘어나고 테마주 투자가 몰릴 경우 투자자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금융시장 리스크가 큰데도 증권사들이 단기간의 수수료 수익을 위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게 금융위 시각입니다.

게다가 세금 구조를 볼 때도 투자자들에게 손해라는 게 금융위 입장입니다. 만약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사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하게 된다면, 증권사에 수수료를 내야할 뿐만 아니라 해외 ETF 양도세 세율(22%)까지 부담해야 합니다. 반면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서 투자자가 직접 투자하면 현행법상 이같은 양도세율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코인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투자할 사람은 가상자산거래소를 거치면 되는데 굳이 증권사 수수료, 해외 ETF 양도세까지 내면서 하는 게 투자자들에게 실익이 없다는 게 금융위 판단입니다. 물론 증권사 입장에선 투자자가 손실을 입어도 수수료 수익이 생기니 ‘남는 장사’입니다.

태영건설이 지난 11일 워크아웃을 공식 개시한 가운데, 작년 6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들의 채무보증 총액은 42조2218억원으로 작년 12월 말(40조206억원) 대비 2조2012억원(5.5%) 증가했다. 현재 증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가 은행이나 보험보다 크진 않지만, PF 연체율과 대출 금리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막대한 채무보증 잔액이 증권사들의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美 승인했는데 韓 뒤처지면 안 돼” 반론도

물론 이같은 입장에 대한 반론도 상당합니다. 카카오뱅크(323410) 대표,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지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비트코인 자체는 투자 중개 상품이 아니지만, 비트코인 현물 ETF는 투자 중개 상품”이라며 “금융위가 유권해석을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주식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 기준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 즉 책임·권리·의무 관계가 명확하냐는 문제”라며 “책임·권리·의무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암호화폐는 상장할 수 없지만, 비트코인 현물 ETF는 다르다. 이것은 운용사나 증권사 책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의원은 “일례로 운용사나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ETF 상품으로 내놓고 투자자가 이를 구입했는데, 운용 사고 등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며 “펀드 사고가 터지면 운용사가 책임지듯이 당연히 비트코인 현물 ETF 판매한 운용사나 증권사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주식성이 있는 것이고, 주식성이 있어 현행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여당 간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관련해 여당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무위 소속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미국이 승인하는 등 해외 선진국도 거래를 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지면 안 된다. 국회 정무위원회를 열어 관련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국회 정무위 여당 간사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금융위와 함께 비트코인 ETF 거래 관련한 자본시장법, 효과와 리스크 등 관련 내용 전반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도 “미국 등 해외 사례도 있는 만큼 추가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4월 총선이 있어서 국회 정무위가 당장 열리기는 힘들겠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데다 시장도 주목하고 있는 만큼 국회와 금융위의 논의가 다각적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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