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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윤 미술평론가] 책이 한 권 펼쳐져 있다. 근데 어째 글자가 하나도 없다. 오직 픽토그램과 이모티콘뿐이다. 과연 읽을 수 있을까. 한번 시도해보자. 알람이 울리고, 해가 뜨고, 알람을 듣고, 눈을 뜨고, 불을 켠다. 어라 읽힌다! 누군가의 아침 일과로구나! 쭉 읽어보니 아침으로는 계란과 식빵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엄청 막힌 길을 뚫고 출근했나 보다. 신기하다. 아무 글자도 없지만, 스토리는 누구라도 읽을 수 있다. 문맹이라도 말이다. 이 신통방통한 책은 쉬빙(徐氷·68)의 작품 ‘지서’(2003∼)다.
쉬빙은 중국 태생의 스타, 아니 슈퍼스타 작가다. 국제화 시대니 만큼 슈퍼스타는 비행기를 타고 다닐 일이 많을 터. 쉬빙은 수많은 여행길에서 ‘지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좌석에 앉아 탑승 안내문을 읽던 어느 날, 종이를 가득 채운 픽토그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거다.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쉽게, 누구하고나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라는 사실에 무릎을 쳤다. 그 길로 작품을 만들었다. 땅으로부터 올라온 책 ‘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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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도 쉬빙은 문자, 또 문자로 이뤄진 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이름을 중국 안팎에 널리 알린 첫 작품인 ‘천서’(1987∼1991) 또한 문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벼락이 친 자리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을 ‘천서’라고 부른다. 하늘에서 내려온 글이란 뜻이다. 쉬빙은 그 의미를 빌려 작품에 ‘천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천서’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서’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책인 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책,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책
‘천서’를 이루는 글자는 중국어처럼 생겼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읽을 수가 없다. 쉬빙이 글자 하나하나를 전부 가짜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원래 있는 한자의 획을 빼거나 더하고,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을 대칭해 세상에 없는 글자를 고안한 것이다. 한글로도 자음과 모음을 이상하게 조합해 없는 글자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쉬빙도 한자를 가지고 장난을 좀 친 거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글자가 한두 개가 아니다. 무려 4000자가 넘는다. 그가 만든 4000여개의 가짜 한자에는 단 한 글자도 진짜가 없다. 한자는 그 양이 어마어마해 중국어 원어민조차 모든 한자를 외우지 못한다. 너무 다양해서 획을 하나 더 긋거나 빼내더라도 어딘가 존재할 법한 한자가 되기 쉽다. 그런데 쉬빙이 고안한 가짜 한자는 모두가 진정한 가짜인 거다. 놀라운 치밀함, 완벽한 완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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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해 쉬빙은 그 모든 글자를 직접 목각으로 팠다. 마치 팔만대장경을 만들 듯 2년여를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글자를 만들고, 목판에 새겼다. 판화를 전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조수도 없이 그 모든 글자를 만들고 새겼다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으리라.
정성을 다해 만든 글자를 보여주는 방식도 중요할 터. 지혜로운 작가 쉬빙은 그 글자들을 종이에 찍어 ‘책’의 형태로 발표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양한 책의 형태를 두루 만들었다. 천장에는 옛 중국에서 사용하던 두루마리, 바닥에는 선비들이 읽던 책, 벽에는 마오쩌둥 시기에 성행하던 대자보까지. 중국에서 대대로 사용하던 ‘책’들을 섞었다. 그런데 그 모든 책에 정작 내용은 없다니! 어이가 없다. 아니 대체 누가 이렇게 정성 들여 가짜를 만든단 말인가. 쉬빙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쉬빙은 1955년 베이징에서 나고 자랐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기간이 1949년부터 1976년까지니, 스무 살까지 마오의 강한 영향력 아래 지낸 거다. 쉬빙의 아버지는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였다. 모두 글과 책과 연관된 직업이었다. 옛 중국에서 ‘문인’은 존경받는 대상이었지만,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글쟁이, 그러니까 마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인은 노동자·군인으로부터 참지식을 다시 배워야 하는 부르주아 집단’일 뿐이었다. 쉬빙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연히 직장을 잃었고, 재교육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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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쉬빙은 학교에서 글자를 잘 쓴다는 이유로 환대를 받았다. 당을 선전하기 위한 대자보를 쓰기 위해 글자를 잘 쓰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쉬빙은 헷갈렸다. 글을 잘 안다는 이유로 부모는 고통을 받았는데, 같은 이유로 자신은 환영을 받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글은 나쁜 건가, 좋은 건가. ‘천서’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쉬빙의 예술적 대응이다. 말도 안 되는 문자로 구성한 말도 안 되는 책을 만들어 ‘글자’ ‘글’ ‘학식’에 부여된 온갖 무거운 의미와 이념을 모두 증발시킨 것. 알고 보면 상당히 젠틀하게 날린 통쾌한 한방이다.
◇알파벳 조립, 한자 닮은꼴 만들어…문화융합 시도
1989년 쉬빙은 미국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톈안먼사태 이후 중국 미술계에 불어닥친 검열과 얼어붙은 분위기가 그를 떠나게 했다. 새로운 땅에서 쉬빙은 ‘영어’란 문자에 맞닥뜨렸다. 이 경험은 ‘새로운 영어 서예’(1994∼2018)란 작품을 탄생시켰다. 제목 그대로 ‘영어로 쓴 서예’다. 영어알파벳을 꼭 한자의 서예처럼 쓴 거다. 이게 무슨 말이냐.
중국어에는 ‘병음’이란 시스템이 있다. 수세기 전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 왔을 때,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발음기호다(예를 들어 쉬빙은 병음으로 ‘Xu Bing’이라 쓴다). 쉬빙은 이 병음, ‘알파벳’을 이상하게 조립해 한자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한자를 알파벳화한 것을 다시 한자처럼 만든 거다. 치밀한 쉬빙은 자신이 만든 ‘한자+영어 글자’를 읽는 방법을 매뉴얼로도 만들었다. 그것만 숙지하면 한자처럼 보이는 영어를 읽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굳이 매뉴얼을 익히지 않더라도 ‘오브’(of) 또는 ‘더’(The)와 같은 글자는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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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빙은 이 영어와 한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문자를 1994년에 전격 공개했고 큰 주목을 받았다. 작품이 워낙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았지만 때도 잘 탔다. 바야흐로 1990년대 초,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에 문을 열 때였다. 미지의 세계에 가깝던 중국에 한창 관심을 갖던 서구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중국인 미술가’ 쉬빙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국적이면서도 접근가능한 작가라니!
게다가 1990년대는 본격적인 세계화가 시작되며 지구촌이란 말이 유행할 때였다. 쉬빙 작품의 주제가 정확히 ‘문화융합’이 아니던가. 가히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더군다나 쉬빙의 작품은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충분히 이국적인 ‘한자’란 소재, 그러면서도 익숙한 영어의 조합! 적당한 온도의 놀라움이었다. 대륙의 작가다운 거대한 스케일은 화룡점정. 여기에 완벽한 작품의 디테일까지.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쉬빙은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2008년 베이징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쉬빙의 작업은 점잖다. 그러면서도 위트가 넘친다. 경박하지 않은 지적인 유머다. 무조건 믿고 보는 작가 쉬빙이 다음엔 또 어떤 예의 있는 농담으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