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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남과 북의 접경지대인 경기도 연천. 지금도 휴전의 긴장감은 계속이지만, 태곳적 자연 유산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고장이다. 그중 차탄천(車灘川)은 신들이 숨겨놓은 은밀한 정원으로 불리는 곳. 용암 협곡으로 수직절벽이나 주상절리, 곡류 등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지형이 이곳에 널려 있다. 까마득한 높이의 수직단애는 용암이 여러 차례 흐르다 굳은 뒤 물살에 깎인 시간의 더께다. 자연이 만들어낸 순수한 ‘예술작품’인 셈이다. 이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차탄천을 따라 걷는 것이 가장 좋다. 연천군은 차탄천 일부 구간을 트레킹 코스로 조성했다. 이름하여 ‘수레여울 에움길’이다. 수레여울은 차탄천의 순우리말. 에움길은 사방을 빙 둘러싼 아름다운 길이라는 뜻이다. 연천읍 차탄리 차탄교 아래에서 시작해 전곡읍 은대리 판상절리에 이르는 약 9.9㎞ 구간이다.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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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을 태운 어가가 빠진 곳 ‘차탄천’
차탄천은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금학산 독서당리 계곡에서 발원해 연천군 신서면과 연천읍 거쳐 흘러내리다가 전곡읍에서 한탄강과 합류한다. 오랫동안 연천 주민의 젖줄이었다. 원래 이름은‘장진천’.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이야기는 이렇다. 태종을 태운 어가가 연천읍을 지나 장진천으로 가는 도중 물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수레’가 ‘여울’에 빠졌다는 의미에서 ‘차탄천’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태종의 어가가 빠진 곳은 현재의 차탄교 부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탄교 일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1914년 개통한 경원선 철도가 차탄천변을 따라 달렸다. 또 차탄천 줄기를 따라 3번 국도가 지난다. 왕림리를 끼고 있는 차탄천 상류 오른쪽의 옛길은 조선 시대에는 ‘부관통로’나 ‘경성통로’라고 불렸다. 이 길은 한양에서 양주, 연천, 철원, 평강을 거쳐 함경도 경흥 서수리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한양 방향으로 난 길을 경성통로, 함경도 방향으로 난 길을 부관통로라 불렀다.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유는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용암 대지인 ‘추가령구조곡’의 핵심 지대이어서다. 추가령은 강원도 평강군 고산면과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 사이에 있는 높이 586m의 고개다. 추가령구조곡은 추가령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로, 원산의 영흥만에서 시작해 서해안까지 호를 그리며 이어진다. 추가령구조곡의 일부인 차탄천은 다른 하천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지질과 지형을 볼 수 있다. 특히 하천을 따라 용암 협곡이 형성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경우다. 총 길이가 36.5㎞인 차탄천은 고생대의 지질층과 함께 신생대 제4기 때 만들어진 현무암 협곡을 볼 수 있다. 그 자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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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흐른 계곡을 따라 걷다
차탄천 트레킹 코스인 수레여울 에움길. 이 길은 평탄하며 단순하다. 그러나 주변 풍광은 수시로 감탄스럽다. 길은 풍광이 바뀔 때마다 차탄천을 넘나든다. 그런 곳마다 어김없이 정겨운 돌다리가 나타나며 걷는 재미를 더한다. 이 길이 특별한 것은 수십만 년 전의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계곡 바닥은 주변의 평균 지표면보다 20~30m 낮아, 걷는 내내 협곡을 이룬다. 또 협곡 양쪽 벽으로는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장관을 펼쳐놓았다.
에움길의 시작점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경원선이 지나는 차탄교 아래다. 발부리에 치이는 돌무더기를 조심하며, 길을 걷다보면 왕림리 방면 오른쪽 길이 서서히 산 속으로 사라진다. 이길은 조선시대 북관통로 또는 경성통로라고 불렸다. 차탄천 일대는 한양에서 함경도 경흥까지 이어진 대로이자 주요도로였다. 이 길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것은 역사가 길을 따라 새겨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길은 왕림리 가마소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차탄천의 비경이 이어진다. 가마소는 가마솥처럼 생긴 웅덩이라는 뜻.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과 화산 지형이다.
가마소에서 한참을 내려가면 아기자기한 정원 같은 풍경이 발길을 붙잡는다. 마치 계단처럼 생긴 삼단폭포며, 작은 바위들이 둥글게 모여 연못을 이룬 모습 등이다. 누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연출해낸 풍경이다. 삼단폭포를 지나면 용소다. 용소는 에울길이 빚은 비경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와 같다. 이어 창산 주상절리, 호랑이바위와 호랑이굴, 해동 양수장, 해동 적벽, 처용 협곡과 사선형 절리, 왕림리 적벽을 지나면 은대리 적벽이다.
은대리 적벽은 왕림교 아래에 있다. 속칭 ‘야외 암석박물관’이라 불리는 곳이다. 19억년 전 선바위와 비교적 ‘젊은’ 신생대 제4기(약 55만년 전~12만년 전)의 현무암 주상절리까지 다채로운 지질구조를 만날 수 있다. 왕림교를 중심으로 수직으로 주상절리와 판상절리 지대가 나뉜 것도 이채롭다. 왕림교 반대편에는 주상절리가 있다. 게다가 손으로 만져가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주상절리가 가깝다. 지금 주상절리 틈에는 순백의 돌단풍 꽃이 만개했다.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고 늦게 핀 벚꽃도 진달래도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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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수직단애 ‘은대리 주상절리’
은대리의 어원은 ‘은터’다. 고려 시대 진사 출신의 김영남이 조선개국을 부정하고 이곳에 숨어 살며 절개를 지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후손들도 그의 지조를 이어받아 한동안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조선 중기부터 관직에 나가 10여명의 판서를 배출했다.
은대리 적벽은 수레여울 에움길의 13코스인 ‘곰비임비길’에 속한다. ‘곰비임비’는 어떤 일이 계속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길에서는 주상절리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어서다. 은대리 적벽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 수직단애다. 그 앞에 서면 ‘적벽’이라는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이 적벽에 무늬를 아로새기고 있는 주상절리는 용암의 자취라기보다 화선지에 일필휘지(一筆揮之)한 붓놀림 같다.
용바위는 왕림교 하류 쪽에 있다. 현무암 지반이 물살에 깎여 용 형상처럼 보이는 바위다. 보는 위치와 시각에 따라 여러 마리의 용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누워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용바위 양옆으로 거대한 현무암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에움길 전체 코스에서 판상절리를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절리는 암석이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 크게 주상절리와 판상절리로 나뉜다. 주상절리는 단면이 다각형인 기둥 모양이고, 판상절리는 기왓장을 겹겹이 쌓아 올린 모양이다.
용바위 앞 도로변 왼쪽에는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용암이 차탄천을 흐른 시기는 신생대 4기. 그런데 이곳에는 신생대를 훨씬 앞서는 몇 억년 전 고생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판상절리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백의리 자갈층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자갈층은 차탄천에 용암이 흐르기 전부터 하천 바닥에 깔려 있던 고생대의 산물이다. 생긴 모양으로야 현재 천변에 널려 있는 자갈과 다를 바가 없지만, 둘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원시 자연의 보물창고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곳이 바로 차탄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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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 길=경기 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 방향으로 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 나들목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 국도를 타고 가면 연천이다.
△가볼 만한 곳=내달 3일부터 6일까지 ‘연천 구석기 축제’ 가 열린다. 27회째를 맞은 이 축제는 아이와 함께 방문해 한나절을 즐기고 가기 좋은 콘텐트가 가득하다.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를 포함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구석기 문화를 두루 접할 수 있고, 특히 1m가 넘는 긴 꼬챙이에 꽂은 돼지고기를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는 ‘구석기 바비큐’는 구석기 축제의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석기를 만들고 집을 짓고 유적지를 활보하면서 구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전곡리의 ‘호모 에렉투스 전곡리안’들과 함께 찍는 인증샷도 축제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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