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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날은 2018년 11월 16일이었다. A씨는 이날 오후 9시 45분께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편의점 앞에서 일면식 없는 여성 B씨를 보게 됐다. B씨는 술에 만취해 있었으며 왼쪽 눈 부위에 피가 난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다.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던 A씨는 B씨가 ‘막걸리 한 잔 사 달라’고 하자 자신의 차량이 있는 주차장으로 B씨를 데려갔다. 이 과정에서 B씨는 넘어져 의식을 잃었고 A씨는 그를 자신의 차량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는 하지 않은 채 항거불능 상태를 틈 타 범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A씨는 B씨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뒤에도 그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B씨를 자신의 차량에 내버려둔 채 집에 돌아갔다. 그는 이튿날 B씨가 차량 뒷좌석에 있는 상태로 출근한 뒤 퇴근하기도 했다.
A씨는 이날 오후 9시 56분이 돼서야 B씨의 휴대폰으로 그의 가족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이를 전해들은 가족은 B씨를 확인한 뒤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께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당시 B씨는 호흡이 가파르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B씨는 약 24시간 동안 차량에 방치된 뒤에야 병원에 이송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손 쓸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난 때였다. 당시 병원에서는 B씨에 대해 ‘뇌손상이 심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적절한 시기 및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B씨는 사건 발생 10일 만인 11월 26일 숨지고 말았다. 사인은 경막외출혈 등으로 인한 뇌간부전이었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에는 ‘B씨의 머리 손상은 A씨를 만나기 전 편의점 의자에서 넘어지며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으나 이후 주차장에서 의식을 잃으며 쓰러지는 과정 혹은 강간 과정에서 추가적인 외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法, 준강간 혐의만 유죄 “범행·사망 간 인과관계 없어”
재판에 넘겨진 A씨 측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것으로 알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이라고 생각해 차량에 피해자를 눕혀놓고 간 것”이라며 “피고인의 준강간 범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고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준강간 혐의는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준강간 범행과 B씨의 사망에는 상당한 인과관계나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으므로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부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가중범에 있어서 예견 가능성은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기에 범행 다음 날의 사정으로 피고인에게 사망 예견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B씨의 병원 기록을 언급하며 “피해자가 A씨를 만나기 전 넘어져 두개골 내부가 골절됐고 최종 사인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형상으로는 찰과상 정도로 보여 피해자의 사망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A씨 측 변명도 수긍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 측과 검찰은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쌍방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피고인의 형사책임은 그대로 묻지 못한다”면서도 “의식이 없는 피해자를 방치하고 잠을 자러 주거지로 들어가고 피해자가 아침까지 의식이 없는데도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 조치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는 형량을 가중할 요소가 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이 준강간 범행을 한 다음 날 아침 피해자를 병원으로 후송했다면 피해자가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는다”며 원심과 같이 중과실치사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