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법조일원화제도 도입 10주년을 기념해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사법정책연구원 등이 공동주최한 심포지엄에서 김신유 부장판사(현 춘천지법 영월지원장)는 현재의 법조일원화 시스템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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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일원화제도는 일정 정도 경력이 있는 법조인들 중 법관을 임용하는 제도다.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별다른 사회 경험 없이, 성적순에 따라 곧바로 임용된 판사들이 부족한 사회 경험 때문에 국민의 법감정을 알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며 제도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2013년 본격화된 법조일원화제도로 법관은 일정 정도의 법조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 선발되고 있다. 법관 최소 법조경력은 2013년 3년을 시작으로 2018년 5년, 2022년 7년, 2026년 10년으로 순차 확대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법조일원화제도 도입 당시 논의됐던 법관에 대한 처우개선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수 인력 지원이 줄어들자, 국회는 법원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판사 임용 최소 경력 7년 확대를 2025년으로 미뤄는 법원조직법을 2021년 12월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법조 최소경력의 7년, 10년 확대는 각각 3년씩 미뤄진 상태다.
당시 법원은 국회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법관 처우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법관 최소 법조경력을 5년으로 유지하는 안을 강하게 희망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예상치 못하게 부결됐다. 결국 법원은 대안으로 ‘3년 유예안’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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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법관 임용 최소 경력 확대가 1년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지만, 2년 전 법원이 우려했던 상황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지원자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채용 시스템의 일부 개선만 이뤄진 상태다. 정작 우수한 법조인들이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 법원은 법조일원화제도 도입 이후 판사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도 도입 이전 연평균 170명이던 신규 임용 판사 수가 제도 도입 첫 해인 2014년 100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최소 경력이 5년으로 확대된 2018년엔 39명에 그치는 등 법원은 여전히 법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법원이 정한 법관으로서의 역량 등을 충족시키는 지원자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법조일원화제도 이전에도 실무능력이 부족한 판사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 판사 임용 시스템 하에선 그 이전보다 초임 판사들의 실력 편차가 커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 부장판사는 “법조일원화 이후에도 여전히 훌륭한 분들이 많이 법원에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전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부족한 분들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력 5년 기준인 현재도 이 같은 상황에서 향후 7년, 10년으로 확대될 경우 우수 법조인의 법관 지원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법원 내부의 우려다. 김 부장판사는 “외부에선 적당히 변호사 자격 있으면 아무나 판사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우수한 실무능력 조건을 가볍게 생각하는 견해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며 “우수한 실무능력이 없는 법조인이 판사가 될 경우 소송관계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소 경력이 증가할수록 경제적 여건 때문에 우수한 법조인의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법조계의 현실이다. 김주영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은 “로펌에서 경력 10년이면 상당한 클라이언트 베이스가 생긴다. 또 그 연령대가 경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판사를 지원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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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수한 법조인을 법원으로 유인하기 위해선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경우 연방법원 판사의 급여는 행정부 장관급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해외 사례를 고려할 때 현재 우리나라의 판사 급여 수준으로는 우수 인재의 유인이나 평생법관제 정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반 공무원에 비해 비교적 급여가 많지만 판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1990년대 법조일원화제도 도입 당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보면 법관의 처우를 개선해 평생 국민에게 봉사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며 “그런데 수십년 간 실질적인 논의는 없었다. 법관의 처우가 우수 법조 경력자 유치에 충분한지 검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여 문제 외에도 현재의 법관 인사시스템 역시 우수 법조인들이 법원 지원을 꺼리는 요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판사 대다수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2~3년에 한 번씩 법원을 이동하는 현재의 법관 인사 시스템 하에서 판사들은 수년씩 가족과 떨어져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외부 우수 인재의 법원 유입을 막는 것을 넘어, 법원 내 우수 인재의 퇴직 사유가 되기도 한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다수 판사들이 부장판사 승진 직후의 지역 근무 때까지는 별다른 고민이 없지만, 몇 년 후 다시 지역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퇴직을 고심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며 “판사 역시 사람인만큼 가족도, 연고도, 친구도 없는 지역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법원은 재판이 없는 날 집 근처 법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를 확대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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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로펌서 자리잡은 10년차 법조인이 법원 이동하려 할까?
여전히 법조계에서 판사의 위상은 다른 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것만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유입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 현실이다. 한상규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직역의 우수한 법조인들이 현재의 근무 환경보다 더 나쁜 경제적 처우를 감수하면서 법관으로 지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법관으로서 명예나 근무 보람이 그걸 넘어서야 하는데 과연 우리 현실이 그러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도 “미국만큼 변호사 풀이 많지 않고 판사 임용에 대한 높은 경쟁률 유지도 안되고 있는데 1년에 한 번 동일한 임용절차 거쳐 적지 않은 경력, 우수한 실무능력, 좋은 성품을 가진 판사들을 최소 150명씩 선발해야 하는 구조”라며 “그런데 정작 처우는 나아진 게 없다. 그런 판사 선발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반문했다.
아울러 법원 내부에선 ‘경력 5년’이 더 확대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상당하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은 이미 빠르게 노쇠화되고 있다. 머지않아 법관 평균 연령이 50대가 될 것이다. 여기에 최소 법조경력 10년이면 초임판사들 나이도 대부분 40대 안팎일 것”이라며 “법원 내부에 30대 목소리도 사라지는 것이다. 로클럭이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인력일 뿐이다. 이게 올바른 방향인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법조경력 10년 안팎인 한 지방법원 판사는 “검찰이든 로펌이든 법조경력 10년 차면 조직 내 입지가 어느 정도 그려진다. 조직에서 높은 평가를 받던 법조인이라면 판사로의 전관을 희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며 “가장 뛰어난 법조 인재들이 법원에 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처우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