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같은 의무대 소속 선임병들이었다. 생활관에서 한 달 넘에 이어진 구타와 가혹행위 수준은 고문에 가까웠다. 생활관 최고참이자 의무대 운전병이었던 이모 병장(당시 25세)은 윤 일병이 전입한 직후부터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했고, 다른 후임병들에게도 윤 일병에 대한 폭행을 지시했다.
이 병장 등 선임병들은 폭행을 당해 다리를 절고 있는 윤 일병에게 다리를 절뚝거린다며 다시 폭행했고, 윤 일병에게 링거 수액을 주사한 후 기력이 돌아오면 다시 폭행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같은 구타와 가혹행위가 반복되며 윤 일병의 몸 대부분에 피하출혈이 있는 등 건강상태가 매우 나빠졌다. 이 병장 등은 폭행 사실이 발각될까 봐 윤 일병이 종교 활동에 가지 못하게 했고 가족 면회도 막았다. 또 자신의 아버지가 조직폭력배라고 거짓말을 하며 “피해사실을 신고할 경우 네 아버지 사업을 망하고 하고, 어머니를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또 폭행을 목격한 의무반 입원 병사들을 협박했다.
◇군대서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던 현실
선임병들의 폭행을 막아야 할 유모 하사(당시 22세)는 이 같은 선임병들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폭행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는 가혹행위를 주도한 이 병장에게 “형”이라 부르며 부대 내 군기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폭행과 가혹행위는 4월 초부터 더욱 심해졌다. 아예 피해자가 잠을 자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밤에 기마자세를 시키고 잠을 자는지 감시했다. 이 병장은 계속된 폭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윤 일병에게 사망 전날에도 무지막지하게 폭행했다. 뜀걸음을 뛰게 하고 제대로 못한다고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하고, 창고로 끌고 가 다른 병사들에게 마대자루로 피해자를 때리도록 했다. 폭행 후 다리를 절뚝거린다는 이유로 또다시 두 시간 넘에 폭행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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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장 등은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자 폭행, 가혹행위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자신들의 범행이 적혀있거나 범행과 관련된 피해자 소지품을 버렸다. 이들은 관물대, 더블백 등을 뒤져 노트 및 수첩에서 관련 부분을 찢거나 물품을 버렸다.
◇피해자 의식잃고 쓰러지자, 폭행 증거 감추는데 급급
군 당국도 병사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음에도 허둥지둥 댔다. 이 병장 등 가해자들이 윤 일병 폭행 사실을 은폐하자 폭행 사실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것이다. 병원 이송에 동행한 헌병대 수사관은 폭행 사실을 파악조차 못했고, 당일 밤늦게 다른 헌병대 관계자가 사진을 본 후에야 비로소 폭행을 의심하게 됐다.
윤 일병 소속 대대장은 7일 오전에야 헌병대에 폭행 관련 신고를 했고, 헌병대가 곧바로 부대로 현장 출동을 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가해자 6명 중 5명은 곧바로 구속됐고, 군검찰 수사를 거쳐 같은해 5월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군검찰은 같은해 9월 죄명을 살인죄로 변경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
군검찰은 주범인 이 병장에게 사형, 공범인 하모 병장, 이모 상병, 지모 상병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해 달라고 군법원에 요청했다. 이 병장은 군사재판 도중 유족을 위한다며 겨우 1000만원을 공탁했다.
1심인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고 상해치사를 유죄로 판단하며 이 병장에게 징역 45년, 하 병장 징역 30년, 이 상병 징역 25년, 지 상병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함께 구속기소된 유 하사에겐 구형보다 높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통상적 양형보다 훨씬 높은 형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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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24시간 같이 생활하고 있는 선임들로부터 도망가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군대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행위 중 가장 비극적 사건임을 방증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1심 상해치사 징역 45년→2심 살인죄 징역 35년→최종 징역 40년 확정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가해자들의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하고 이 병장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다른 공범들에겐 징역 12년, 유 하사에겐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범들의 살인죄를 인정한 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다시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고등군사법원은 이 병장에 대해 “범행 동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선임병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생활관을 인간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극악한 상황으로 만들어갔고 범행을 주도했다”며 “다시는 군에서 끔찍한 범죄로 무고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할 형벌의 예방목적 등을 고려하면 장기의 징역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환송 후 고등군사법원은 주범 이 병장에게 징역 40년, 다른 공범들에겐 상해치사죄만을 인정해 각각 징역 7년, 유 하사에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형은 2016년 8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유족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이 병장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도 이 병장은 소송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답변서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변론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으며 사실상 소송에 무시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배상판결이 내려져도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민사소송 1심은 이 병장이 윤 일병 유족에게 약 4억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은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다만 국가에 대한 배상 청구에 대해선 “주의의무를 위반하고 이에 위번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