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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유한양행 대표는 영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1978년 유한양행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성실성과 리더십 등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2002년 유통사업부장과 2000년 병원영업부 이사, 2006년 마케팅홍보담당 상무, 2009년 경영관리본부장(전무), 2012년 경영관리본부장(부사장) 등 사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2015년 ‘직장인의 꿈’인 대표이사에 오른 후 올해 연임하며 3년째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임기는 2021년까지다. 최경민 유한양행 인력관리팀 부장은 “모든 직원들은 입사 후 철저한 평가시스템과 교육시스템을 통해 업무 역량을 키우고 임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며 “임원이 될 경우 업적과 역량을 기준으로 사장 후보군을 추리며, 이러한 시스템은 직원들에게 ‘능력을 발휘하면 누구나 CEO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오너 일가 ‘갑질 논란’은 불행히도 해당 기업에 다니는 아무 잘못 없는 직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금수저라는 이유로, 능력 여하와 상관 없이 CEO에 오른 오너 2·3세가 물의를 일으킬 경우 직원들은 사기저하는 물론 불매운동·매출하락 등으로 고용불안 상태에 놓인다. 그런 점에서 고 유일한 박사가 1926년에 설립한 후 1939년 국내 최초 종업원 지주제도를 도입, 1969년부터는 전문경영인체제를 이어가는 유한양행은 소위 ‘흙수저’에게 희망을 주는 일자리로 주목 받는다.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은 유한재단(15.46%)과 국민연금공단(12.47%), 유한학원(7.6%) 등이 주요 주주다. 하지만 유일한 박사 일가는 유한양행을 포함한 유한재단·유한학원과 전혀 관계가 없다. 유 박사 일가가 가진 주식 역시 단 한 주도 없다. 유일한 박사가 회사를 경영하던 1960년대 당시 아들인 유일선 부사장이 유한양행에서 근무했지만 ‘경영의 되물림을 막는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 부장은 “전체 임직원 약 1700명 중 유 박사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며 “오너 일가가 없다 보니 승진에 있어 ‘유리천장’이 없으며, 이는 구성원 누구나 대표이사가 될 수 있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1대 수장인 이정희 대표를 포함해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이후 CEO 자리에 오른 10명 모두 유한양행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최고 자리에 도달한 사례다. 지난해 3월 유한양행에 입사한 영업부서 정모(27)씨는 “입사면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면접관 질문에 ‘어떤 일을 하던 대표이사 자리에 꼭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며 “유한양행에서는 대표이사라는 자리가 결코 헛된 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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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성장세가 이어지고 신규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보니 신규채용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206명을 채용, 창업 이후 처음으로 연간 신규채용자 수가 200명을 돌파했다. 유한양행은 올해도 200명 이상을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최 부장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업무 이해도·숙련도와 비슷한 비중으로 평가하는 것이 인성”이라며 “주인의식·화합·청렴도 등 ‘유한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인재인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에 입사할 경우 의무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또 아무리 일을 능숙하게 하고 실적이 좋다고 해도 유한정신과 맞지 않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최 부장은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리더십이 통하기 때문”이라며 “신입사원에게도 유한정신을 가장 강조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최초로 대한민국 기업보국대장에 헌정된 연만희 고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한양행은 임직원들의 애사심으로 유명하다. 정 상무는 “애사심과 주인의식은 누가 가르친다고 배우는 게 아니다”라며 “열심히 일하면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이것이 오너 주머니로 가는 게 아니라 임직원과 사회가 나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힌다”고 말했다. 퇴사하는 직원도 적다. 유한양행은 평균 근속연수 11년 2개월로 국내 상위 10대 제약사 중 가장 길다. 이날 현재 30년 이상 근속자 수는 53명에 달한다. 최 부장은 “회사 구성원이 모두 주인이다 보니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는 한 모두 함께 가자는 분위기”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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