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1972년 9월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 춘천시 우두동 논두렁에서 열살 여아 정모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 부검해보니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다. 피해 여아의 부친은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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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수사 데드라인인 그해 10월10일 잡혔다. 춘천에서 만화방을 하던 정모 씨가 저지른 범행이었다. 정씨의 만화방은 정양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었다. 애초 혐의를 부인하던 정씨는 “내가 정양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정양이 발견된 현장에 남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연필과 빗도 정씨의 것이라는 목격자 진술이 나왔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협박 탓에 거짓 자백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법원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강간치상과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정씨는 1987년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되기까지 15년여를 복역했다. 차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북에 안착하고 신학을 공부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정 목사는 줄곧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재심을 신청했지만 2001년 기각됐다. 그러다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정씨 사건에 진실 규명을 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재심이 이뤄졌고, 법원은 2011년 정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정씨의 자백과 목격자의 진술은 경찰의 고문과 협박으로 나온 거짓이었다. 거짓된 증거를 기반으로 정씨의 유죄가 인정됐으니, 유죄 판결은 잘못된 것이었다.
정씨와 가족은 이 판결에 터잡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씨가 사건 이후 누명을 쓰고 복역했고, 가족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딘 데 대한 명예 회복 차원이었다. 정씨의 부친은 아들이 구금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으로 숨을 거뒀다. 법원이 정씨와 가족 사정을 헤아려 손해배상을 인정한 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1심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힌다. 정씨가 소송을 내야 하는 시한(소멸시효)이 지났다는 게 이유였다. 통상 민법의 소멸시효는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까지이지만,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의 소멸시효는 이로부터 6개월이라고 해석해버린 탓이었다. 정씨가 소송을 낸 시점은 앞서 형사보상금(9억6000여만원)을 받은 지 6개월하고 열흘이 지난 뒤였다. 국가배상 취소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정 목사는 2021년 7월28일 숨을 거뒀다. 향년 87세. 국가배상을 받지 못한 채였다. 2013년 개봉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정 목사의 사연을 각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