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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건너는 K-바이오...CFO를 구원투수로 속속 투입

나은경 기자I 2023.03.02 10:16:24

미코바이오메드·유틸렉스·코아스템켐온, 수장 교체
창업주는 CTO로 물러나고 CFO 대표이사로 승격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바이오벤처들이 투자 혹한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으로 잇따라 대표이사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회사를 창업한 연구자 출신 대표이사는 기술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 회계사, 경영컨설턴트 등 경영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있다. 보릿고개를 건너고 있는 바이오벤처들이 경영 효율화 및 투자유치를 위해 전문 경영인들을 구원투수로 내세우는 모양새다.

2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코바이오메드(214610)는 다음달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성규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올 초 사임한 김성우 대표는 미코바이오메드에 흡수합병된 체외진단 의료기기 제조업체 나노바이오시스의 창업주로 14년 간 회사를 이끌어왔다. 김 전 대표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지만 기술고문으로서 개발 역량 및 기술 통합 솔루션을 위한 자문을 지속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김성우 미코바이오메드 전 대표이사(사진=미코바이오메드)
미코바이오메드는 코로나19 진단키트 판매로 2020년에는 전년대비 1015%의 높은 매출성장률을 기록하고 흑자전환(영업이익 34억원)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풍토병화되면서 1년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갔다. 지난해 영업적자 규모는 2021년보다 138% 늘어난 259억원을 기록했다. 대표이사 교체는 침체된 회사 분위기를 쇄신하고 수익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새로 선임된 이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부터는 미코바이오메드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미코바이오메드 관계자는 “이 대표는 모기업 미코에서 사업기획 및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며 “모기업과의 협력 강화와 더불어 미코얼라이언스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새 성장동력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코바이오메드는 올해 영업조직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 글로벌 영업망을 확충할 계획이다.

유연호 유틸렉스 신임 대표이사(사진=유틸렉스)
유틸렉스(263050) 역시 최근 대표이사가 최수영 사장에서 유연호 사장으로 교체됐다. 최 사장은 유틸렉스의 자회사인 면역항암제 개발사 판틸로고스 대표이사로 이동하고 유틸렉스는 유 신임 사장과 권병세 회장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앞서 종근당과 휴온스 사업개발본부장을 역임한 최 사장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교토대 화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제약·바이오 전문가였다. 반면 유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펌에서 주요 이력을 쌓은 경영전문가다.

유 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경영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회계·경영 컨설팅펌인 PwC의 파트너로 활동했다. PwC 컨설팅사업부문이 IBM에 매각된 뒤에는 IBM 미국 본사에서 근무했다. 유틸렉스 관계자는 “앞으로 권 회장은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리드하는 한편, 경영 및 대외 글로벌 사업 전반은 유 사장이 집중해서 이끌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바이오벤처에서 제약·바이오 전문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경영전문가가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움직임은 증시가 경색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인 코아스템켐온(166480) 역시 창업자인 김경숙 대표이사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물러났다. 대신 2018년부터 코아스템의 CFO를 지내온 권광순 전무가 사장으로 승진, 신약개발 사업부를 총괄하는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MBA를 마친 권 사장은 삼일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을 거친 재무전문가다.

코아스템켐온의 경우 내년 주력 파이프라인인 루게릭병 치료제 ‘뉴로나타-알’의 임상 3상이 마무리될 예정이라 1~2년 내 기술이전이라는 과업을 완료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양대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의생명과학연구소 연구부교수를 지낸 김 전 대표는 CTO이자 연구소 상임 고문으로 위촉돼 임상 3상에 몰두하기로 했다. 2018년부터 코아스템켐온과 함께해 온 양길안 회장은 전체적인 경영의 중심축으로 권 사장이 이끄는 신약개발 사업부와, 송시환 사장이 리드하는 비임상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사업부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교수 출신의 창업주가 설립한 바이오벤처로부터 재무 지식이 있는 CEO 구인 문의를 많이 받았다”며 “바이오벤처 초기 단계에서는 연구개발에 집중할 연구형 CEO가 낫지만 어느 정도 외형성장을 한 뒤에는 재무나 경영전략에 밝은 CEO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바이오벤처들이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지면서 재무쪽 커리어를 가진 임원들이 대표이사로 올라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재무에만 밝을 뿐 바이오산업 및 자사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영전문가들이 대표이사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CFO 출신 임원이 대표이사가 되면 아무래도 그간 스프레드됐던 파이프라인이 몇 개로 정리되는 등 불필요한 사업 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이나 경영효율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바이오벤처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텐데 단기 성과에 집중해 파이프라인을 솎아내면 장기적으로는 성장동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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