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A씨는 2006년 8월 9일 전남 무안의 한 저수지에 빠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의 몸에선 다량의 약물이 검출돼 경찰은 살인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며 사건은 미제로 분류됐다. 경찰은 2011년 공범 문모(당시 53세)씨로부터 일부 범행을 자백받은 후 본격적인 재수사를 진행했다. 김씨의 내연남 정모(당시 57세)씨의 지인인 문씨는 A씨 사망 2년 전인 2004년 5월 김씨 등의 부탁을 받고 A씨 살해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2004년 3월 정씨에게 “남편을 차로 치어 살해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씨는 문씨에게 이 제안을 전달한 후 착수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건넸고, 5000만원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사망 2년 전에도 살인미수…공범들 범행 인정
김씨는 2004년 5월 중순, 남편 A씨가 함께 운영하던 식당을 나서자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씨에게 이를 알렸다. 문씨는 이를 전해들은 후 화물차를 몰아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A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문씨가 A씨를 충돌한 후 겁이 나 행인과 함께 A씨를 구조해 병원으로 후송해 살인은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이 사거로 두개골 골정상 등을 입는 등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문씨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문씨와 약 100만원에 합의해줬다.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2006년 7월 23일, 지인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후 10시경 집 앞에 도착한 것이 확인된 김씨가 감쪽 같이 사라졌다. 그는 17일 후인 같은 해 8월 9일 집에서 약 30㎞ 떨어진 한 저수지 속에서 자신의 차량 운전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A씨의 시신에선 외상 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장기 속에서 치사량 수준의 수면제 성분이 발견돼 사인은 ‘급성 약물중독’으로 추정됐다. 김씨에게 자살 동기가 특별히 없던 점까지 더해 경찰은 A씨가 살해됐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아내 김씨가 소득에 비해 과도한 수준의 사망 보험료를 납부한 점을 수상히 여겨 수사를 진행해 “김씨가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A씨를 살해했다”고 결론 냈다. 남편 사망 2년 전 살해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점 등도 유력한 정황 증거였다.
경찰은 남편 A씨가 사라진 2006년 7월 23일 밤늦은 시간에 독극물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를 남편이 평소 마시던 민들레즙에 넣어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사망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남편에게 식당 비품을 함께 가지러 갔다 오자고 말해 차량에 태운 후 김씨가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
|
내연남 정씨가 “김씨가 A씨를 차량과 함께 저수지에 수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김씨 전화를 받고 저수지에 갔고 김씨가 A씨 시신을 옮기고 수장하는 것을 근처에서 보고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신을 수장한 후 김씨를 터미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A씨에게 민들레즙을 먹였고, 저수지에 오던 중 A씨가 잠들었다’는 말을 김씨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
실제 당일 오후부터 늦은 밤 사이에 김씨와 정씨는 수차례 통화한 기록이 확인됐다. ‘당일 밤 저수지에 가지 않았다’는 김씨 주장과 달리, 김씨가 밤 11시가 넘은 시간 저수지 근처에서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가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다. 또 운전을 하지 못한다던 김씨가 과거 A씨 차량을 운전한 경험이 있던 것도 파악됐다.
검찰은 경찰의 판단 그대로 김씨에게 살인·살인미수·사기 등의 혐의를, 다른 공범 2명에겐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살인은 물론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도 완강히 부인했다. 김씨의 내연남 정씨는 범행을 인정했지만, 또 다른 공범 문씨는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라고 주장했다.
◇“핵심 증인 내연남, 시간 지날수록 오히려 진술 명확…못믿어”
재판 결과는 검찰 예상을 벗어났다. 1심에서 김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2004년 있었던 살인미수 범행만 유죄로 판단해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공범 정씨와 문씨에겐 각각 징역 4년과 5년형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살인 혐의와 관련해 결정적 증거인 정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정씨가 수사 초기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하다가 수사와 재판이 진행돼 갈수록 구체적 진술을 내놓아 진술 일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키가 150㎝가 되지 않는 여성 김씨가 키 168㎝, 몸무게 약 58㎏인 A씨 사체를 혼자서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겼고, 근처에 있던 정씨가 이를 보고만 있었다는 공소사실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아울러 검찰이 제출한 다른 정황 증거와 관련해서도 “김씨가 어떻게 수면제를 입수하고 어떤 방법으로 마시게 했고, A씨가 언제, 어디에서 사망했는지 등에 관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살인의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검찰은 “정씨 진술의 신빙성이 있음에도 이를 배책해 김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됐다”며 항소했다.
2심은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의 살인 혐의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정씨도 ‘김씨가 200m를 운전하며 앞서 가는 자전거도 추월하지 못할 정도로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상황에서, 늦은 밤 김씨가 저수지까지 약 30㎞를 운전했다는 정씨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당일 늦은 밤 저수지 관할 기지국 주변에서 통화한 내역이 있다는 것만으로 김씨가 그 무렵 저수지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3년 9월 상고를 기각해 김씨의 살인 혐의 무죄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