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주요 기업은 차입 경영으로 회사를 일궈왔다. 외국 자본이 이탈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고,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재계 14위의 한보그룹 부도(1997년 1월)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로 삼미그룹(3월), 진로그룹(4월), 삼립식품·한신공영그룹(5월), 쌍방울그룹(10월), 해태그룹·뉴코아그룹(11월)이 차례로 부도를 맞았다. 10대 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계 순위 8위의 기아그룹도 그해 7월 부도를 맞았다. 대우그룹은 쌍용차를 인수(12월)했으나 이 여파로 1999년 11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하반기 들어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지수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화폐가치와 신용도 하락에 따른 여파였다. 앞서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과 인니가 겪은 현상이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아시아를 떠나라’는 보고서(10월)를 냈다. 정부는 미국 등 주변국에 차관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제 신평사는 한국 신용등급을 또다시 하향 조정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11월21일 IMF 구제금융을 공식 확인했고, 이튿날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모두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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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부실 금융사에 대한 대대적으로 정리가 이뤄졌다. 동서증권과 5개 종금사는 영업정지를 당했다. 상업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은 한일은행을, 하나은행은 보람은행을, 국민은행은 장기신용은행을, 조흥은행(신한은행의 전신)이 강원은행을 차례로 합병했다. 제일은행은 외국자본에 팔렸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쉬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환율은 최고치를, 주가는 최저치를 각각 연일 경신했다. 그해 12월 고려증권과 한라그룹, 영진약품, 경남모직, 동양어패럴, 삼성제약, 청구그룹이 연쇄 부도를 맞았다. 실직이 늘어나 실업률이 산업화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임금 체불이 늘어 직장인이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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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01년 8월23일 IMF에 빌린 돈을 전부 갚았다. 애초 예정한 기한을 3년이나 앞당겼다. 국민의 고통분담과 기업의 체질 개선, 정부의 외화 관리 노력이 뒤따른 결과로 평가된다. IMF 이전 300억 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은 현재(10월 기준) 4140억 달러로 늘었다. 다만 이후 굳어진 양극화와 고용불안 등 후유증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