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비정규직 제로' 과욕이 부른 노노갈등…“차기정부 시한폭탄”

최정훈 기자I 2021.06.16 00:00:00

건보공단 사태 예고된 갈등…민간 위탁까지 무리한 정규직화 영향
가이드라인도 없이 책임 모두 기관에…제2의 건보공단 사태 위험 커
자회사 설립해 정규직화 마친 공공기관도 勞勞 갈등 불씨 ‘여전’
“민간 위탁은 수용하되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 협력방안 찾아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고객센터 직원들의 정규직화를 두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벌어진 노노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부작용에 대한 고민없이 밀어붙인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기존 구성원간의 갈등,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어떻게 조달할 지 등 정규직화 이후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한 준비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에서 이를 강행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에 위탁한 업무까지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추진해 원·하청 근로자간에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후폭풍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이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기존 직원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늘어난 비용 부담도 걱정거리다. 차기정부가 시한폭탄을 떠안게 될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관 로비에서 김용익 이사장이 이틀째 단식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간 위탁까지 무리한 정규직화…예고된 ‘노노갈등’

공단 노노갈등은 콜센터와 같이 민간에 위탁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까지 정규직화 대상에 포함해 놓고도 명확한 가이드라인 하나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앞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지난 10일 공단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을 시작했다. 고객센터 노조는 1600여 명의 상담사를 공단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공단 고객센터 업무는 효성ITX·제니엘 등 민간기업이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반면 정규직 노조는 민간기업 소속인 고객센터 비정규직 직원들까지 공단이 직고용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 직원들과의 역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콜센터와 같은 민간 위탁 근로자의 정규직화에 대해선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았다.

민간 위탁 사무는 법령 근거, 자치분권, 사무의 다양성 등으로 정규직 전환 방안을 일률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침으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정규직 전환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고 정규직 전환방식을 알아서 정하도록 했다.

문제는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앞장서서 민간 위탁했던 고객센터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자 이후 재정 여력이나 근무조건 등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도 대부분 기관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민간 위탁 직원들을 직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자회사를 설립해 민간 위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다른 기관 사례를 들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직고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콜센터 같은 민간 위탁 업무는 애당초 기술 발전 등의 영향으로 일자리의 변화 가능성이 커 정규직화하기 어려웠다”며 “정규직화 추진 때부터 민간 위탁 업무는 직고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어야 했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탓에 형평성과 불공정 문제가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건보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과 직영화를 요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규직화 마친 공공기관도 노노 갈등 불씨 ‘여전’

우여곡절 끝에 정규직화를 완료했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이미 정규직 전환을 마친 공공기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회사 설립후 채용은 기존 노조와의 마찰을 피하면서도 고용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기관들이 선호한 방식이었지만 막상 자회사로 채용된 직원들은 본사 직원들과 급여 및 복리후생 격차가 크다는 이유로 불만이 적지 않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점이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19만 9538명 중 4만 9709명(25.8%)는 본사가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정규직 전환 인원 4명 중 1명꼴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 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결과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50.4점에 그쳤다.

평가 결과, 대상 기관의 평균 점수는 50.4점이었다. 최고점은 73.2점 수준이었고 최저점은 18.5점에 그쳤다. 평가대상 기관 가운데 47곳(65.3%)은 정관과 법령 등에 설립 근거가 있었지만, 25곳(34.7%)은 설립 근거조차 없었다. 모기관과 자회사 간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계약 사례도 발견됐다.

이는 공공부문 자회사 실태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자회사 운영 실태 평가위원회’가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를 한 기관 72곳의 적정 자본금 출연, 불공정 계약 여부, 노사 협력관계 등 11개 지표로 평가한 결과다.

정규직 직고용 또한 기존 직원과의 임금 및 복리후생 격차, 성과급 지급 차별 등을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지순 원장은 “무조건적인 정규직화는 경영난과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 기존 정규직 노조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협업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대립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가 되는 것”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민간 위탁 업무는 결국 정규직 노조도 혜택을 보는 관계”이라며 “양측 노조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선 민간 위탁은 유지하면서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가 협업하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작년말까지 중앙·지방정부, 교육·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 853개 기관의 비정규직 19만 2698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연도별 누적 기준, 단위=명 [자료=고용노동부,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