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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사회] 일하는 사람의 목숨값, 1명과 2명의 차이

장영락 기자I 2021.05.16 00:00:15

경영자단체 "중대재해, 사망자 2명 이상으로 기준 높여야"
노동계 "산재 사망 90% 이상 1명 사망 사고, 기준 바꾸면 법 실효성 없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입법예고 앞두고 논쟁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갈등 해소를 위해 존재하는 법이 때로는 갈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법과 사회’에서는 사회적 갈등, 논쟁과 관련된 법을 다룹니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발생한 20대 청년 노동자 고 이선호 씨 사망 사건은 이번 주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동시에 ‘구의역 김군’과 ‘태안발전소 김용균’ 이후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 사망사고에서 얻은 교훈은 아직 많지 않다는 사실도 환기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최초 구상에서 크게 후퇴한 것도 모자라 사용자 단체들은 최근 다시 시행령의 몇몇 사항들을 고치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대재해 기준을 사망자 1명이 아닌 2명 이상으로 늘리자는 사용자단체 주장을 보면, 법률 변화에 따른 기업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그들의 계산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가도 깨닫게 됩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화물 컨테이너 작업 중 숨진 고 이선호 씨 사고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에는 ‘중대재해’의 기준을 명시했습니다.

1항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중대산업재해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고 규정합니다.

‘다음 각 목’ 가장 첫 번째 규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산재 사고 가운데 사망만큼 파괴적 영향이 큰 것은 없으므로, 사망자가 1명이라도 발생했을 경우 중대재해로 보는 규정에는 아무런 시비도 필요치 않아 보입니다.

사망과 달리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는 2명 이상 나와야 중대재해로 정하는 기준과도 잘 비교됩니다.

그런데 사용자 단체들은 이 사망자 기준을 1명이 아닌 2명으로 높이자고 주장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그 이유에 대해 “1명 이상 사망 사고는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답합니다.

2020년 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 수는 882명으로 하루 평균 2.4명이 죽어나갔습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산재 사망률(산업 노동자 10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경제 규모가 비슷하거나 더 큰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비교하면 순위는 더 올라갑니다.

이처럼 너무 많은 산재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1명 사망 사례입니다.

고용노동부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요청으로 제출한 ‘2020년 사업장 안전사고 발생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2명 이상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전체의 3% 정도에 그치며, 사망자 1명이 발생한 사건이 90% 이상으로 대부분입니다.

즉 사용자 단체 요구대로 사망자 2명 이상인 사례만 중대재해로 규정할 경우 한 해 일어나는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그저 노동자 1명이 죽은 산업재해로, 경영주의 책임을 따로 물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숫자 단 ‘1’을 늘리는 것만으로 사용자가 얻게 될 편익은 너무나도 큰 셈입니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아들 얼굴 새겨진 현수막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영주의 책임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등의 사용자 측 주장을 그저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지 경영주 처벌과 같은 조치가 자신들이 치러온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는 너무 비싸 보인다는 것이 이 법에 반대하는 이유라면, 법안이 이들 요구대로 바뀌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산재 사망 사고에서 법원이 사망자 1인당 기업에 내리는 벌금 평균은 450만원 밖에 되지 않기에 많은 기업들은 돈을 들여 사망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안전보다 ‘일이 터지고 난 뒤’의 벌금을 택해왔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빈발하는 사망 사고를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국회 역시 기업들과 비슷한 정도로 일하는 사람의 목숨값을 책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사망자 1명’의 숫자가 이 법에서 가지는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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