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못에 비친 야(夜)한 풍경, 천년 신라의 밤에 취하다

강경록 기자I 2017.06.23 00:00:11

천년고도 경주의 밤을 걷다
대릉원 돌담장따라 신라 속으로...
광활한 대지, 군란 이룬 23개 고분군
군주 등 연회 즐기던 동궁과 월지
조명 비친 첨성대, 곡선의 美뽐내
한국의 나폴리'' 감포항 바다는 덤

경주 야경의 백미 ‘동궁과 월지’
경주 야경의 백미 ‘동궁과 월지’
경주 야경의 백미 ‘동궁과 월지’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천년고도’ 경주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경주는 신라의 고도이자 화랑과 귀족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또 다른 경주는 내륙 최고의 휴양지이자 관광지이다. 펼치면 보일듯 너무나 가까워서 익숙하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낯섦그 자체다. 익숙함 속에 새로움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경주다. 볼거리도 무궁무진하다. 삼국시대 신라의 도읍지였던 만큼 역사와 문화를 품은 보배로운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있고, 동해의 아름다운 비경도 숨겨져 있다. 경주를 초여름 여행지로 삼아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이유다.

대릉원 황남대총 야경
◇경주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야간 조명을 받아 신비감을 더한 첨성대
경주의 야경은 낭만적인 여름밤과 잘 어울린다. 곳곳에 자리한 거대한 고분의 위용과 화려한 궁궐, 장엄한 사찰의 흔적들은 낮의 열기가 식고 어둠이 드리우면 서늘한 매력을 드러낸다. 고대도시의 신비로운 밤의 풍경은 고루한 경주의 이미지를 단숨에 걷어낼 정도로 인상적이다.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에 조명이 들어오는 시각은 일몰 직후인 8시 무렵. 밤 마실의 시작은 경주 시내 대릉원의 야경을 보고 첨성대를 둘러 본 뒤 가장 화려한 야경을 뽐내는 동궁과 월지에서 끝낸다.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일대는 최고의 야간 관광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시내 한가운데 있어 찾기도 수월하다. 무려 2만 8000평 평지에 23기의 능이 솟아 있다. 경주 최대 규모의 고분군이다. 대릉원에서 꼭 찾아가야할 야행지는 황남대총이다. 남쪽과 북쪽 두개의 봉분으로 이뤄진 황남대총은 길이만 120m에 이르고, 높이는 아파트 7층에 해당하는 23m에 달한다. 해마다 봄철이면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찾는 출사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왕릉과 구릉사이로 덩그러이 솟아있는 한 그루의 목련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때 지난 지금은 하얀 목련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경주 야행을 즐기고자 한다면 한번은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첨성대는 대릉원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축조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높이 9.5m로 인왕동 벌판에 우뚝 서 1500년 세월을 묵묵히 버티고 있는 국보 31호다. 건축 당시 첨성대는 천문 관측을 통해 농사시기를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며 국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라 짐작되고 있다. 첨성대는 밤에 더 빛난다. 첨성대에 조명이 비치면 곡선이 부각되면서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천 년 고도의 유적이 멋진 경관 조명 아래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경주 야경의 백미는 동궁과 월지에서 만난다. 안압지 또는 임해전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군주와 신하가 연회를 즐기던 별궁이다. ‘달이 비치는 연못’ 이라는 뜻인 ‘월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 총 둘레 1000m의 크지 않은 연못이다.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누각이 데칼코마니처럼 연못 속에 그대로 비치는 야경은 화려한 듯하면서도 장중한 멋이 흐른다. 대릉원과 첨성대가 곡선의 미학을 뽐내고 있다면, 동궁과 월지의 밤풍경은 투영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 삼색 매력 넘치는 경주의 바다

문무대왕릉 앞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무속인들
경주 시내를 나와 동해로 향한다. 눈부신 청색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멋진 바위 경치와 곳곳에 숨은 유적들, 그리고 바닷가 식당들이 내는 싱싱한 해산물도 우리가 모르는 경주의 또 다른 모습이다.

첫 목적지는 봉길해변이다. ‘죽어서도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이 있는 곳이다. 그가 죽고 13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봉길해변은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속된 말로 ‘기도빨이 죽이는’ 명소란다. 해변에는 무속인들이 노점처럼 지어 놓은 ‘굿당’들이 즐비하다. 꽤나 한가로운 해변과 바다무덤, 무당들이 내는 북소리. 애국의 문무대왕은 저승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 한굽이 돌아 왼쪽으로 차를 몰면 문무왕 때 짓기 시작해 신문왕 때 완성된 고찰 감은사 터(감은사지)에 이른다. 문무왕이 사찰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즉위 2년째(682년) 완공, 삼국통일을 이룬 아버지께 감사드린다는 뜻으로 ‘감은사’라 불렀다. 단아한 모습으로 선 거대한 동·서탑과 금당 터 바닥의 독특한 돌널 구조가 눈길을 끈다.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건물 밑에 설치한 공간이라고 한다. 지금은 금당 터와 탑 두 기만 남아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두 탑을 통해 무엇을 느낄지는 여행자 각자의 몫일 것이다.

감은사 터에서 해안 쪽으로 나와 국도변에서 만나는 이견정은 옛 이견대 터에 새로 지은 정자다. 신문왕이 바다에 떠다니던 섬에서 구한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모든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 등 큰 이익을 얻은 곳에 세우고 역대 왕들이 참배했다는 이견대 터다. 정자 앞 정면으로 긴 용을 닮은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감포항에는 감은사지의 삼층석탑을 본뜬 송대말등대가 우뚝 솟아 있다. 송대말(松臺末)은 글자 그대로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 아름드리 해송이 우거진 송대말 앞 바다는 암초들이 길게 뻗어 해난사고가 잦았던 곳. 1955년 무인등대로 시작한 송대말등대는 1964년 유인등대로 바뀐 후 퇴역했다. 그리고 2001년 새 등대가 만들어져 멀리 수평선을 벗한다. 송대말등대 앞 바다에는 암초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의 돌기둥들로 이루어진 주상절리로 이곳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다. 주상절리 위에 만든 시멘트 구조물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던 곳이다.

우엉김밥의 원조 보배김밥
◇여행메모

△찾아가는 길= 고속철도(KTX)로 서울에서 신경주역까지 2시간20분. 신경주역에서 쏘카를 이용해 차량을 렌트하면 경주 시내는 물론 동해 드라이브까지 즐길 수 있다.

△잠잘곳= 보문단지의 호텔·모텔들이나, 감포읍 주변과 양남면 주상절리 해안길 도로변에 많이 들어선, 바다 전망이 좋은 펜션·모텔을 이용한다.

△먹을곳= 국내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고장이 바로 경주이다. 그 중에서도 화산불고기 단지는 한우미식기행의 대명사격으로 통한다. 한우전문점 ‘운수 대통’은 토박이들 사이 맛집으로 통한다. 특히 등심, 갈비살 등의 육질이 좋은 편이다. 사골국물을 육수로 끓인 된장국에 말아먹는 된장국수도 일품이다. 또 이 집은고슬고슬한 솥밭 맛도 좋다. 경주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성동시장 내 보배김밥은 ‘우엉김밥’으로 유명하다. 잘 조려진 진한 갈색 빛깔의 우엉을 김밥 위에 수북히 쌓아준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과 함께 특유의 향이 살아있어 평범한 김밥을 고급 음식으로 만들어 준다.

운수대통 ‘갈비살’


경주 월성지구 내 공원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여행객
이견대에서 바라본 봉길해변. 바다 한 가운데 암초가 바로 문무대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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