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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는 조선사회과학원 실장,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등 총 23명의 기고자가 글을 실었다. 모두가 직책과 소속을 분명히 했는데 김정철만 유일하게 이를 밝히지 않았다.
북한 고위급 출신 탈북민 A씨는 매체에 “특수한 신분으로 소속과 직책을 공개해선 안 되는 중요 인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혼자 소속과 직책을 밝히지 않은 점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로 추정된다”며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자신감을 보이는 시점에서 경쟁 상대가 아닌 친형을 제한된 범위에서 서서히 공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철은 ‘우리 공화국을 핵 보유국의 지위에 올려세우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업적’ 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냈다.
핵심 내용은 1990년대 김정일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자주권 수호를 위해 핵개발을 결단했고, 2006년 첫 핵실험과 2009년 두 번째 실험으로 핵 보유국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든 것은 “천출명장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업적”이며 “영웅적 결단”이라고 찬양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나온 이 기고문은 핵 보유의 정당성을 재정립하려는 수사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김 국무위원장 딸 김주애를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띄우는 시점에서 북한의 핵개발을 역사적 유산으로 공식화하려는 기고문이 나온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평이다.
최근 들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자녀로 추정되는 아이들도 공개되고 있는데, 이는 김씨 가문의 ’4대 세습‘ 구도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정 센터장은 “김정철의 등장은 가문 전체의 역사적 정당성, 핵 보유의 당위성을 되새기는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며 “김정철이 가문의 역사 기록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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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적으로 기타와 음악에 빠져 사는 모습이 노출됐는데 그가 돌연 김정일의 ’핵유산‘을 정당화하는 역사 서사를 집필했다는 점에서 그의 지위에 변동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과거 북한은 ‘후계자 외에는 모두 제거한다’라는 잔혹한 권력 계승 문법을 따랐다. 김 국무위원장이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김정철은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살아남았다.
아울러 김정철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혈통적 정통성을 갖추고 있어 ’가문의 유산‘과 ’핵 정당성‘이라는 무형 자산을 관리하는 비공식 문고리 권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