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사회적 갈등이 가정의 문턱을 넘어 부부간 이혼 사유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탄핵이혼’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법률 상담 현장에서 포착됐다. 정치적 갈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심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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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법 전문 양소영(사법연수원 30기)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는 12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한 부부 갈등 상담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탄핵을 찬성하는 부인과 탄핵을 반대하는 남편이 탄핵 문제로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정치 뉴스를 매일 틀어놓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상담이 30대 젊은 부부에서도 등장했다”고 전했다.
양 변호사가 최근 상담한 사례에 따르면 정치 성향 차이와 부정선거 인정 여부를 두고 부부간 갈등이 심화돼 술자리에서 폭행 사태로까지 이어진 케이스도 있었다. 서로 맥주를 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양 변호사는 “정치적 견해를 서로 강요하다 보니 ‘너 이거 이해 못 하면 개·돼지다’라는 표현까지 나왔다고 한다”며 “배우자에게 그런 표현을 쓰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갈등은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 변호사는 “30대 부부뿐 아니라 40대, 50대, 60대, 70대 부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며 전 세대에 걸쳐 정치적 갈등이 부부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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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찬반을 둘러싼 가정 내 갈등은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 사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2030 세대 중에서는 소개팅 시 정치 성향이 맞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양 변호사는 “토요일에 뭐 했니?”라는 일상적인 질문조차 “집회에 참석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우회적 질문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를 고를 때 정치 성향 차이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8.1%가 “심하게 걱정된다”고 했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보사연의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는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33%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나 지인과 술자리를 같이 할 의향조차 없다’고 응답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이념 갈등…계엄으로 심화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는 4점 만점에 3.04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진보와 보수 간 이념 갈등은 3.52점으로, 지역 간 갈등(3.06점), 정규직-비정규직 갈등(3.01점) 등 다른 모든 갈등 유형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념 갈등 점수는 2018년 첫 조사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이들 위해서라도 정치 갈등 자제해야”
양 변호사는 종교 갈등만큼이나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이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이러한 갈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다. 각자 다른 당을 지지할 수 있다”며 “그런데 이것 때문에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 이혼하고 ‘엄마 아빠가 정치 성향이 달라서 헤어졌다’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상처받겠나”라고 반문했다.
양 변호사는 “서로 정치적 성향이 다르더라도 가정에서는 자제하고 특히 아이들 앞에서 정치적 이슈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가족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벌금을 물리거나 TV에서 뉴스가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는 등의 방식이다. 과음 상태에서 논쟁을 하지 않고 서로 집회 참여를 권유하지 않는 것도 갈등을 피하는 방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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