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모 보험사 자산운용 책임자는 지난해 국내 자산비중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린 덕에 강달러 효과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치가 경제를 그야말로 잡아먹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혼란은 갈수록 가중되는 상황이고, 가뜩이나 어려웠던 경제는 아예 꽁꽁 얼어붙었다. 계엄 쇼크에 다들 지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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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2.0%), 경제협력개발기구(2.1%) 등 국제기구는 아직 2%대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지만 자본시장에서 보는 시각은 더 어둡다. 씨티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5%로 낮췄고 JP모간은 무려 1.3%를 제시했다. 탄핵 정국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내수 불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제 전망이 이러니 자본시장에서도 투자나 운용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한 사모펀드는 국내 기관투자자(LP)로부터 출자를 받기로 했다가 계엄 선포 이후 불확실성에 취소한다는 통보를 받고 멘붕(멘탈 붕괴)에 빠지기도 했다. 연초에 국내 연기금에 얼굴도장 찍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려던 해외 운용사(GP)들도 일정을 줄줄이 연기했다. 탄핵 이후 추이를 봐가면서 방한 일정을 잡겠다는 분위기다.
자본시장의 가장 큰 악재는 불확실성이다.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야 시장 주체들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정치적 불확실성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최대한 분리해 다룰 필요가 있다. 정치 리스크가 고스란히 경제에 전이되지 않도록 필요한 경제 정책을 적시에 시행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홍보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행히 환율 급등세는 진정된 모습이지만 대통령 탄핵 후 권한대행인 총리까지 탄핵되면서 대외 신뢰도는 급격하게 하락했다.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의 해외 투자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국내에 지점을 두고 있는 외국계 은행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해외 수탁은행의 국내 사무소 법무담당이 비상계엄 선언 후 밤새 국회에서 계엄해제가 된 내용을 꼼꼼하게 보고서로 작성해 고객들에게 뿌렸다고 한다. 글로벌 결제의 20%가량을 책임지는 이 은행의 보고서 한 장이 위기감을 진정시키는데 한몫 했다는 평가다.
대한민국 경제가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뛸 수 있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