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독한 삼성인’ 화두를 던졌다. 최근 메모리를 비롯한 반도체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주력인 TV, 스마트폰 사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에 빠지자, 질책성 메시지를 낸 것이다. 이 회장이 근래 들어 내놓은 메시지 중 가장 강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JY “사즉생 각오로 위기 대처해야”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의 경영 철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이 회장은 이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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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또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이 회장이 근래 내놓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한 검찰 구형 직후 최후 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삼성 위기론’을 처음 거론한 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는데, 이번 메시지는 당시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고 삼성 임원들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술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등의 언급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주문해 왔다.
삼성은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임원은 “‘독한 삼성인’이 핵심 화두라고 본다”고 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 삼성다움의 복원이 곧 독한 삼성인으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삼성이 ‘세계 1등’이라는 자만에 빠져있다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실제 이번 세미나에 나온 외부 인사들은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게 아니냐” “상대적인 등수에 집착하다 보니 질적 향상을 못 이루고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경쟁사들 추격 허용한 반도체·TV
완제품(DX)부문의 주력 사업인 TV, 스마트폰 등은 중국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V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3년 30.1%에서 지난해 28.3%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스마트폰의 경우 19.7%에서 18.3%로 떨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메시지는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고 내외부에 천명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며 “올해도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할 강화를 목표로 경기 용인에 위치한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삼성은 앞서 2009~2016년 매년 임원 대상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