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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땅끝에 핀 초록빛 詩, 해남 산이정원

이민하 기자I 2025.03.28 06:00:00

"산이정원, 미래세대에 보내는 참회의 편지"
부동산 개발 힘쓰던 이기승 회장 회한 담겨
연내 전체 공개 ''국내 최대'' 정원 자리매김
케이블카 타면 발 아래로 울돌목 거센 물살
전통 품은 ''해창 막걸리'' 깊은 풍미에 감탄

산이정원 전경 (사진=산이정원)
[해남(전남)=글·사진 이민하 기자] “산이정원은 미래 세대에 보내는 참회의 편지입니다”

전남 땅에서도 목포와 영암, 해남이 맞닿은 광활한 간척지 한가운데. 이곳에 미래형 스마트시티 ‘솔라시도’가 숨을 틔우고 있다. 그 중심에 한 사업가의 오랜 깨달음이 뿌리내린 ‘산이정원’이 자리한다. 정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즈넉한 길목마다 자연의 속삭임이 스며든다.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누군가의 회한이자, 늦었지만 간절한 사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주인공은 BS그룹(구 보성그룹)의 창업주 이기승 회장이다. 그의 삶 대부분은 도시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쉼 없이 빌딩을 올려 도시를 찬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자신이 만든 공간 어디에도 후손들이 걸어야 할 자연은 없었다. 그 깨달음이 말년에 그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끌었고, 바다와 논밭이었던 넓은 평야 위에 자연을 되돌려 줄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 ‘산이정원’은 탄생했다.

산이정원의 하늘마루 (사진=산이정원)
◇남도의 땅에 피어난 초록빛 꿈, 산이정원

산이정원은 해남 땅의 광활한 대지 위에 펼쳐져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곳의 전체 면적은 약 53만㎡(16만 평). 그중 현재 공개된 곳은 3분의 1(5만 평)이 채 되지 않는다. 올해 안으로 예정된 나머지 공간까지 모두 열리면 산이정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정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산이정원이 꿈꾸는 건 ‘완벽한 정원’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무성해지는 숲을 상상한다. 갓 심어진 묘목들은 아직 앳되지만, 마치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며 미래를 그리는 공간인 듯 바람을 머금고 하늘로 뻗어 간다.

그래서일까. 산이정원은 마치 거대한 화폭에 붓질하듯 조성됐다. 숲과 들판, 그리고 바다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단순한 정원이 아닌 자연이 품어낸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일군 이는 누구일까. 바로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을 키워낸 국내 최고의 식물 전문가이자 정원사인 ‘이병철(57) 대표다. 그는 오래전부터 남도에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한다면 정원은 남도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해남. 바다가 가깝고 역사와 인문학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는 땅.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사라 불리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았다. 정원사는 땅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했던 이 대표는 그 누구보다 해남이야말로 정원을 그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믿었다.

그의 신념처럼 산이정원에 서면 사방으로 자연이 펼쳐진다. 계절 따라 풍경은 변하고 나무, 꽃은 시간이 그려내는 또 다른 그림이 된다. 해남의 햇살 아래, 산이정원에는 초록빛 꿈이 자라고 있다.

이달 13일 산이정원에서 열린 ‘정원도시 포럼’ 현장 (사진=산이정원)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배움의 공간이 되다

산이정원 곳곳에는 이기승 회장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특히 나무 하나하나도 세심히 선택했다. 탄소저감 효과가 뛰어난 수종들,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며 산소를 배출하는 상록 활엽수들, 그리고 공기 정화에 좋은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과 측백류의 나무들로 정원을 가득 채웠다.

올 하반기엔 국내 최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원학교’도 들어선다. ESG 인문학 강좌, 어린이 정원사 양성 프로그램 등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할 예정이다. 정원을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배움의 공간으로도 활용하는 것이다.

산이정원은 크고 작은 행사 장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정형화된 실내를 벗어나 탁 트인 자연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주는 특별한 공간으로 벌써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최대 200명 수용이 가능한 실내 회의실도 갖춰 실내외를 아우르는 독특한 행사 연출도 가능하다. 개관 첫해인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홍보 없이도 ‘해남 정원도시 콘퍼런스’ 등 6건의 행사가 열린 배경이다.

다음 달 26일엔 ‘ESG 정원 페스티벌’도 예정돼 있다. 어린이 사생대회, ESG 한마당, 북 콘서트, 친환경 체험 프로그램, 가족 단위 퀴즈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 외에 푸드트럭을 배치해 누구나 자연 속에서 머무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병철 원장은 “이곳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이 회장의 철학을 담아낸 공간”이라며 “그 가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유일하게 갑옷을 입지 않고 있는 울돌목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 (사진=이민하 기자)
◇이순신 장군의 고뇌 서린 울돌목과 전통 품은 해창막걸리

해남과 진도 사이를 가르는 울돌목(명량 해협)은 조류의 속도가 초속 6~10m에 이를 정도로 거센 물살이 몰아치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불과 13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무너뜨린 명량해전(1597년)이 벌어진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울돌목 앞 갑옷을 입지 않은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은 명량해전을 앞둔 밤, 깊은 고민에 빠졌을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울돌목 위를 가로지르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타면, 유리 바닥을 통해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강한 조류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400여 년 전 이곳에서 펼쳐진 치열한 전투를 떠올려 본다.

명량해상케이블카 전경 (사진=명량해상케이블카)
케이블카를 타고 진도 스테이션으로 넘어가면 망금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망금산’(望禽山)은 ‘금수와 같은 왜적의 동태를 살핀다’는 의미를 지닌 곳.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에 서면 왼쪽으로는 목포, 오른쪽으로는 부산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울돌목의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풍경은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해창 주조장 정원 (사진=이민하 기자)
해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소는 해창 주조장이다. 1927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곳은 현재 최고급 프리미엄 막걸리 ‘해창’ 막걸리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알코올 도수 18도의 해창 막걸리는 깊은 풍미와 뛰어난 품질로 많은 미식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해창 주조장 정원에 세워져 있는 황국식민서사탑 (사진=이민하 기자)
이 주조장이 특별한 건 술 때문만이 아니다. 주조장 정원은 약 2500㎡(약 756평) 규모에 수목 40여 종이 울창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정원 한편엔 일제강점기의 흔적도 있다. 건물을 처음 지은 시바다 코헤이가 일본 천황에게 맹세를 표하는 ‘황국식민서사탑’을 정원에 세웠다가 해방 직후 집을 떠나며 정원 연못에 비석을 던졌고 70년 후 지금의 오병인 대표가 정원을 손보다가 발견해 건져 올렸다. 오 대표는 이 탑을 마당 한쪽에 세워 ‘잊지 말아야 할 역사’로 보존하고 있다.

해창주조장에 살고 있는 고양이 (사진=해창 막걸리)
해창 주조장의 주인공은 역시 주조장을 지키는 고양이들이다. 고양이들은 시음 테이블 위 막걸리 잔을 태연히 걸어 다니며 방문객을 반긴다. 정원 곳곳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는 고양이들은 사람의 손길에도 도망가지 않는다. 주조장 관계자는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주조장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약 30마리에 달한다”며 “주조장에서 끼니때마다 밥과 약을 챙겨주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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