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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1일 지난해 재무제표 감사보고서에서 UAE 원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수원에 추가 지급해야 할 공기연장비용을 1546억원 규모의 기타 충당부채로 반영했다. 한수원이 지난해 UAE 원전 사업 종료 후 10억달러(약 1조 4000억원)의 추가비용 정산을 요구해온 데 대한 손실 가능성을 회계상 미리 반영한 것이다.
한전과 한수원의 추가비용 정산 추산액이 9배를 넘는다는 점에서 양사의 갈등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수원은 즉각적인 지급을 요구하고 있으나, 한전은 추가비용 추산액 차이가 크다며 협상에 평행선을 긋고 있다.
탄핵 정국에 정부의 중재 역할도 약화하며 양사는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서의 법정 다툼을 준비 중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이 지난달 국회에서 “자회사가 모회사를 상대로 클레임을 제기해 유감”이라고 언급하면서 양측 감정의 골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전의 재무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한해 8조 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4년 만에 흑자 전환했으나 부채는 205조 4000억원으로 1년 새 3조원이 더 늘었다. 2022년 전후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35조원대 누적 영업적자를 낸 탓에, 연간 이자비용이 4조 7000억원까지 늘어난 탓이다. 한전이 추진한 20조원 규모 UAE 원전 사업의 수익률이 1% 미만으로 추산되는데, 한수원에 1조원 이상을 지급해버리면 재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두 회사 경영진 모두 추가비용 정산비용을 쉽게 포기할 경우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업계에선 원전 수출 기능을 두 공기업에 이원화한 문제가 곪아 터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앞선 2016년 공공기관을 핵심기능 위주로 재편한다는 취지에서 한전이 도맡아 온 원전수출 총괄 기능을 한수원도 할 수 있도록 이원화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 공기업의 수출 대상 지역을 명확한 기준 없이 나눠 주도권 다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대체로 한전은 중동과 서유럽을 맡고 한수원은 동유럽을 맡고 있지만, 동남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지역은 뚜렷한 구분이 없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은 “하나의 원전을 두 회사가 건설하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3~4월께 본계약 예정인) 체코 원전 수출은 주계약자와 주사업자가 모두 한수원이 주계약하고 한수원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수출 창구를 다시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2016년 이원화 때만 해도 한전은 많은 해외 사업을 수행하며 쌓은 국제 신인도 측면에서, 한수원은 다수의 원전 운영 경험 측면에서의 장점을 살려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선 효율 저하 같은 부작용만 부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어디는 한전이 하고 어디는 한수원이 하는 현 구조는 기형적일 뿐만 아니라 해외 다수 원전을 수주해 운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이라며 “단기적으론 한전이든 한수원이든 수출 기능을 일원화하고 장기적으론 프랑스처럼 수출을 전담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전담토록 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정범진 교수 역시 “해외 원전 건설 효율을 높이려면 참여 사업자들이 상호 신뢰 아래 설계 변경 등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현재는 두 회사가 있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UAE 원전 수출 경험을 토대로 다음 사업 추진 땐 이런 문제가 없도록 새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곧 원전 수출체계 개편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고 있어 실제 개편 작업은 정국 안정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조만간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