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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정덕현의 끄덕끄덕]

최은영 기자I 2025.03.20 05:00:00

지옥 같은 교육, 좀비처럼 무너지는 아이들
학부모도 자기만의 삶 없이 ''○○맘'' 신세
고3에서 중학생으로, 다시 초등생·유아로
이 기가막힌 경쟁의 지옥도, 어디까지 펼칠텐가

개그우먼 이수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대치맘의 사실적인 묘사로 화제를 모은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편의 한 장면.(사진=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캡처)
[정덕현 문화평론가]2022년 방영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학교 안에서 고립된 아이들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다. 이성은 마비되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본능만 남게 되는 좀비들 속에서 끝까지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묘하게도 우리네 교육 현실과 겹쳐진다. 입시교육의 전쟁 속에서 진정한 교육은 실종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입시 좀비처럼 아이들을 방치해버리는 현실이 그것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래서 이 지독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편입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처럼 그려진다.

2018년 방영돼 무려 23.8%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SKY 캐슬’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SKY’로 대변되는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자식 교육에 지나칠 정도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한민국 상위 0.1%들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을 그렸다. 여기 등장하는 김주영(김서형 분)이라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이른바 ‘대치맘’들조차 모르는 비밀스러운 톱 오브 톱급의 입시 코디네이터다. 드라마의 판타지적 설정일 뿐이지만 성공률 100%라는 이 입시 코디네이터가 건드리는 욕망은 시청자들에게 신드롬급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지나친 사교육의 결말은 꼭대기로 등떠밀려진 아이들이 그곳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비극이다. 지나친 입시 경쟁 현실이 주는 막연한 선망과 동시에 그곳에 결코 보통의 서민들은 편입될 수 없다는 현실이 주는 절망감과 분노가 뒤섞여 이 드라마의 화제성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2020년 방영한 ‘펜트하우스’ 역시 청아예고라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교육 전쟁을 막장의 복수극으로 엮어냄으로써 최고 시청률 28.8%를 기록한 드라마다. 헤라팰리스로 대변되는 부동산 1번지의 집값이 교육 1번지와 겹쳐져 있는 현실을 교묘하게 비틀어내고 조롱하듯 담아낸 점이 개연성이 없는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긴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저 부동산과 사교육으로 상징되는 강남 지역에 대한 대중의 양가감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편입되고 싶지만 편입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갖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이 그것이다.

2023년 방영된 ‘일타스캔들’은 달콤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이 만들어내는 비극 또한 그려졌다. 입시에 실패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희재(김태정 분)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작년에 방영돼 화제가 됐던 ‘졸업’ 역시 로맨스가 주인 멜로드라마였지만 대치동을 배경으로 하는 입시 전쟁이 그 배경에 깔린 이야기였다. 사교육이 주가 돼 공교육이 실종되는 그 현실이 드라마의 주된 이야기로 등장했다.

즉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고 그 중심에는 강남 대치동으로 대변되는 사교육 열풍이 있었다. 이 흐름을 두고 보면 최근 ‘대치맘’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우먼 이수지의 패러디가 거둔 큰 성공이 당연해 보인다. 이수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라는 에피소드에 35세 ‘제이미맘’으로 등장한다. 값비싼 특정 회사 패딩을 입고 나와 이제 4살밖에 안 되는 아이의 학원 라이딩(차로 직접 학원 보내주는)을 전담하는 이 인물은 아이가 하는 별 의미도 없는 말과 행동이 특정 재능을 보여주는 ‘모멘트’라며 아이를 학원 보낼 정도로 호들갑을 떤다. “세세세”를 “셰셰셰”로 듣고 ‘중국어 모멘트’라며 중국어 학원에 보내는 식이다.

세태풍자가 담긴 페이크다큐지만 이 짧은 영상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월에 공개된 첫 에피소드는 무려 833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고(16일 현재), 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538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신드롬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영상이 실제 현실에 만든 변화다. 당시 이수지가 입고 나온 ‘대치맘들의 교복’이라 일컬어지는 패딩이 이슈화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고 그래서 더 이상 입고 다닐 수 없는 패딩이 중고마켓에 대거 풀리는 기막힌 현상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영상 밑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은 많지만 유행을 종식시키는 연예인은 그녀가 최초’라는 댓글이 붙었다. 대치맘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는 댓글들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저들만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막연한 선망의 감정도 어른거린다.

대치맘에 대한 화제는 최근 방영되고 있는 ‘라이딩 인생’이라는 드라마로도 이어졌다. ‘7세 고시’라고까지 불리게 된 교육 현실 앞에서 딸을 원하는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워킹맘 정은(전혜진 분)과 그 라이딩을 대신해주게 된 정은의 엄마 지아(조민수 분)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극 중 등장하는 송호경(박보경 분) 같은 엄마의 자식 교육은 아이가 불안증세를 느낄 정도로 학대에 가깝게 그려진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아이들의 나이가 겨우 7세다. 그 어린 나이에 학원을 전전하고 이해도 못하는 영어 연설문을 외워 스피치 대회 준비를 하는 상황이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까.

앞서 언급했던 입시교육 현실을 담은 드라마들의 짧은 계보를 보면 알겠지만 그 경쟁은 이제 고3에서 점점 내려와 7세의 미취학아동으로까지 오게 됐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또 좋은 고등학교를 위해서 좋은 중학교를 가는 식으로 경쟁이 거슬러올라가 결국 미취학아동까지 오게 된 것이다. ‘라이딩’이란 표현이 등장한 건 그래서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학원을 전전하게 되다 보니 혼자 다닐 수 없게 되고 그래서 라이딩을 전담해야 하는 엄마들이 나온 것. 이렇게 되면서 아이 교육을 전담하는 전업주부와 일하면서 아이를 육아해야 하는 워킹맘 사이에서도 차별이 생겨난다. ‘라이딩 인생’에도 등장하지만 워킹맘은 전업주부들의 모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정보에서 밀리게 되고 그건 또한 입시교육 속 사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현실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이 악순환 속에서 부모가 갖는 박탈감과 부채의식은 커지고 이건 비정상적인 사교육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최근 ‘대치맘’이 뜨거운 키워드로 떠오른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이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난 3일 첫 방송한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라이딩 인생’ 포스터.(사진=지니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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