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점심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기사를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경제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들끼리도 언젠가부터 “안 좋은 내용만 쓰려니 나라 걱정도 되고 우울하다”, “이러다 정말 큰 일 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한다.
이미 고민하고 있었던 내용이기에 물음에 대한 답은 빨리 나왔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는 것은 대개 숫자와 자료, 취재 내용 중에서 △새롭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실을 뽑아서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하는 과정이다. 특히 ‘위기’에 민감한 이유는 미리 그 전조를 발견하고 알림으로써 우리 사회가 대비토록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나오는 많은 경제 관련 지표들, 그중에서도 경제 활력도와 연관된 많은 지표가 코로나19 대유행,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 때 이후로 가장 안 좋은 수치를 가리키고 있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도소매·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내리 감소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이후 최장 기간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지난주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올해 1분기 기업경기실시지수(BSI)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 배수’는 지난달 0.32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에 가장 낮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외부 충격의 강도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측면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위기에 비해 지금 상황이 낫지만, 위기 수준을 가리키는 수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서히 위기로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발생해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이 아니라, 예상 가능하지만 대비책이 없어 부정적인 영향을 피해 가지 못한다는 ‘그레이 스완’ 위기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출생·고령화, 혁신 산업 부재, 경직화된 노동시장, 사회 양극화와 쏠림 현상 등은 우리 경제의 성장판을 닫는 문제점으로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위험이 상존하도록 방치해 왔고, 그 결과는 대내외 위기 속에 더 증폭돼 고통과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뻔한 말이지만 위기라고 생각한 순간이 기회일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은 늦었다’는 말은 손 놓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늦은 것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때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시기다. 탄핵으로 맞은 갑작스러운 대선이고, 새 정부는 인수위도 없이 곧바로 출범하게 된다. 누가 대한민국을 저성장과 침체의 위기에서 건져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때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은 없어 ‘공약의 실종’이라는 이번 대선에서 대권 주자들의 경제와 사회구조개혁 관련 공약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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