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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관리 시스템 강화보다 법적 책임을 피하는 데 집중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형식주의 규제와 처벌 위주의 접근이 ‘책임 회피’와 ‘안전의 형식화’, ‘서류 중심의 안전관리’와 ‘보고를 위한 안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산업안전 시스템을 변화와 혁신을 저해하고 책임 회피와 무사안일을 초래하는 과도한 형식주의에서 탈피해 실질주의 안전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법적 처벌 중심에서 산재 감소, 위험 요소 개선, 안전 체감도 등 성과 기반 평가로 전환해 안전 설비 투자 세제 지원, 저리 대출, 정부 보조금 등 기업의 자발적 안전 투자 유인 강화, 원청이 하청 업체의 안전조치 비용 분담, 안전 교육 지원 등 하청노동자 보호 정책 개선, 작업 현장 의견을 반영하는 ‘안전 소통 시스템 구축’ 등 현장 중심의 안전문화 확립, 감독관의 점검과 서류 평가 의존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반 안전 예측, 실시간 위험 감지 센서, 빅데이터 분석 등 데이터 기반의 선제적 안전관리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정부도 중소기업의 안전보건체계 구축 지원, 위험성 평가 보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민간 전문기관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안전 현장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하는 안전관리자의 역량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기업들은 법적 의무 이행 차원에서 자격증 소지자를 형식적으로 배치하고 타 업무를 겸직시키는 경우가 많다. 안전관리자가 이직하거나 새로운 사업장으로 이동할 경우 경력을 인정하는 경력개발 및 관리 체계 부재는 산업 전체의 안전 수준 저하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기업의 안전보건전담임원(CSO)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전관리 사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안전보다 이익만 좇는 영리 업체의 난립을 초래하고 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저해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산업안전검사기관은 안전관리 수탁 사업장의 위험기계·기구 안전검사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정작 선박안전기관은 조선소, 해운회사, 해양구조물 관리기업 등 회원사를 상대로 선박검사를 수행한다. 전기분야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안전에 대한 통합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산업안전검사기관만 불합리한 규제를 받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하루에 5개 이내의 수탁 사업장 점검 기준 또한 단순히 규제 준수를 점검하는 형식적인 관리 요인으로 작용한다. 디지털 혁신과 AI를 활용한 스마트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안전 교육 역시 실질적인 효과를 높이려면 이론 중심 교육에서 탈피해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및 실습 중심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안전 선진국 영국은 획일적 규제 방식에서 탈피해 기업이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As Low As Reasonably Practicable, ALARP) 수준을 입증할 책임을 가지는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 우리도 단순히 ‘법만 지키면 된다’는 형식주의를 넘어 실제로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실질을 추구하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